[자본시장 속으로] 법 이론과 자본시장의 발전

입력 2019-12-1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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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법은 과학적 방법론에 의해 치열한 논의와 검증을 거쳐 수립된 인문사회과학의 한 분야다. 그런 만큼 법령들, 법 내의 다양한 조항들은 정교한 유기체처럼 상호 작용하며 가장 바람직한 사회 질서를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정돼야 한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 바라보는 법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관할 조직이 다를 뿐 아니라 각종 이해관계 또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연성규범(Soft Law)인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의 도입과 관련된 사례들도 그랬다.

일반적으로 연성규범이란 국회 또는 정부기관에서 제정하는 법률이나 시행령(경성규범, Hard Law) 등에서 규정하기 어려운 세부 사항들을 시장 참여자들이 업계 내의 자율적 합의를 통해 제시하는 자치 규범이나 모범 규준과 같은 기준을 의미한다. 공적 규제 기관에 의한 방식이 아닌, 최대한 사적 자치를 추구하는 것이므로 이론적으로도 실무적으로도 매우 선진적이다. 다양하고 급변하는 금융시장 환경에서는 일률적인 규제가 어렵기 때문에 특히 유용하게 작용한다.

문제는 기존 법규와 연성규범 간에 그 취지가 어긋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투자자들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데 대한 자사의 운용철학을 원칙으로 제정, 공표하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자율원칙인 만큼 코드를 충실히 수행하는지 여부는 주로 기관투자자의 홈페이지상 게시를 통해 파악된다.

따라서 코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장과의 소통에서 ‘공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코드 도입 전에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는 주주 활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결권 행사 내역 공시를 개별회사의 ‘주주총회 5일 전까지’에서 ‘주주총회 후 5일 이내’로 완화했으며, 급기야 2016년에는 매년 4월 말까지 ‘1년치를 모아 한꺼번에’ 공시할 수 있도록 하여 3차례에 걸쳐 공시 규정을 대폭 완화해 버렸다.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는 주총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 개정의 취지는 공시 내용의 충실성을 확보하고 실무상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었는데, 해당 개정 이후 과연 그 내용이 더 충실해졌는지, 업무 부담이 얼마나 많이 줄어들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문제는 법적 효력 면에서 코드와 같은 자율규범보다는 법률 및 시행령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연구소에서도 코드의 취지와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해당 시행령의 공시 규정을 원래대로 ‘주총 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관할 부처의 코드 담당 조직과 시행령 담당 조직의 업무가 다르고 커뮤니케이션 또한 원활치 않은 데 있었다.

하지만 보다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이유는 주총 전에 안건의 찬반 입장이 공개되면 언론이나 일반 주주들의 관심을 많이 끌 수 있고 소액주주들도 이러한 방향에 따라 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용하게 주총을 넘기길 원하는 기업 입장과 배치된다는 데 있었다. 다만, 2019년부터 국민연금이 일정 요건 하에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에 미리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법규의 관할 부처가 다를 경우 문제는 더 커진다. 소통의 문제 외에도 각 부처 간의 우선순위와 이해관계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들에 대한 포괄적 규정인 상법은 ‘법무부’에서 관할하지만, 상장사와 자본시장법, 외부감사법은 ‘금융위원회’ 소관이다. 한 기업의 문제일지라도 정관, 이사회, 이사, 감사위원회, 감사, 기업분할, 합병과 같은 ‘지배구조 관련 사항’은 상법에서 규율하지만, 밸류에이션과 같은 ‘재무 관련 사항’은 자본시장법과 동법 시행령에서, ‘외부 감사인의 역할과 책임 관련 사항’은 외부감사법에서 규율한다.

예컨대, 실무적으로 많이 접하게 되는 합병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어디에 문의를 해야 하는가? 문제 제기의 취지에는 공감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개선될 수 있을까? 개선 방안이 다른 규정들과 충돌되지는 않는가? 등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더구나 한국은 일본과 달리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수 있는 의원입법이 존재한다. 만일 정파적인 이해관계까지 더해진다면, 법률의 유기적 통일성은 고사하고 법 자체가 누더기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최근 상장사에 적용되는 회사법 규정을 상법에서 분리하여 독립 법제화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필자 또한 이를 지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일된 법 체계라는 이론적인 엄밀성에 관리 효율성이 더해지고, 나아가 자본시장과 지속적으로 상호 소통할 수 있을 때, 법 이론과 자본시장의 현실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성숙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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