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한 토막] 승강이와 실랑이

입력 2019-12-23 05:00 수정 2019-12-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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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라 편집부 교열팀 차장

지난밤 아파트 주차장 앞에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슈퍼에 가려고 주차장을 지날 때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는데, 물건을 사고 돌아올 때까지도 다투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지하 주차장이 없어 지상에 주차해야 한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 저녁이면 이중 삼중 주차는 비일비재하다.

이날은 이중 주차한 차주가 연락이 되지 않아 차를 급하게 빼려던 사람이 잔뜩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이중 주차한 이가 달려와 차를 빼려다 서로의 상황을 얘기하며 다투고 있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의견이 달라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다투는 일은 승강이일까, 실랑이일까.

승강이(昇降이)는 한자어 ‘오를 승(昇)’, ‘내릴 강(降)’에 접사 ‘-이’가 결합한 말이다. 한자어에서 의미하듯 서로 다투다 보면 목소리가 오르내리게 되고 혈압이 오르내릴 수 있다. 승강이는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을 뜻한다. ‘승강’이라고도 한다. 반면 실랑이는 ‘이러니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일’을 의미한다. 이렇듯 승강이와 실랑이는 의미상 차이가 있다.

그런데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두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오랫동안 쓰다 보니 실랑이에 본디 가지고 있던 뜻 외에 다른 의미가 더해졌다. 국립국어원에서 실랑이의 사전적 의미에 승강이의 뜻도 덧붙인 것이다.

따라서 서로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다투는 경우에 ‘승강이’, ‘실랑이’ 둘 다 쓸 수 있다. 다만 남을 못살게 굴거나 괴롭히는 것을 뜻할 때는 실랑이만 쓸 수 있다.

이와 함께 자주 쓰는 ‘승갱이’, ‘실랭이’, ‘실갱이’는 각각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방언으로 표준어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모든 일이 항상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론 승강이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실랑이를 당해 곤욕을 치를 수도 있을 것이다. 노여움이나 울화에 북받쳐 성급하게 행동으로 옮기면 후회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고, 시간의 여유를 갖자. 우리가 염려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해결점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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