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배달의 민족, 혁신성장 아이콘과 독점자본 괴물 사이

입력 2019-12-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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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배달의민족을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에 40억 달러에 매각하기로 계약한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지분 87%의 인수 금액이 4조8000억원으로 국내 벤처기업의 인수합병 대금으로 사상 최대라는 사실이 관심을 끈다.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협상 가격으로 제시된 약 2조 원의 2배를 넘으며 현대건설의 시가총액에 맞먹는 금액이다. 과연 배달 플랫폼 회사가 이런 정도의 가치를 지닐까 놀랄 정도다.

그런데 배달의민족 인수합병 소식이 전해진 뒤 딜리버리히어로 주가가 연일 급등세로 지난 20일 주당 69유로에 시가총액은 132억1900만 유로라고 한다. 배달의민족에 투자한 벤처캐피털들도 최소 6배에서 최고 1000배에 이르는 대박을 터트렸다.

무엇인가 우리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국내 1위라고 해도 2018년도 매출액이 3193억 원이고 영업이익이 586억 원인 회사가 5조 원에 이르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이처럼 엄청난 금액에도 불구하고 배달의민족이 독일 자본에 인수되는 것에 대해 찬반 시각이 엇갈린다. 찬성하는 입장은 국내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 글로벌 자본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고 해외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을 내세운다. 벤처투자가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향후에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강조된다.

배달의민족은 인수합병을 통해 엑시트(벤처 졸업)해 투자금을 상환함으로써 투자가들이 혁신기업에 투자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또 다른 배달의민족을 노리는 창업이 활성화되고 이들에 대한 투자도 능동적으로 이루어져 혁신성장이 결실을 맺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배달의민족이 독일 자본에 인수당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은 민족주의적 정서와 독과점의 폐해 가능성에 방점을 둔다.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같이 이용하며 한국의 대표적 벤처로 성장시킨 배달의민족이 외국 자본에 의해 인수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 감정이 크다. 배달의민족이 게르만 민족으로 국적 변경하는 것에 배신감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배달의민족을 4조 원 넘게 인수할 자본이나 기업이 있을 것인가? 국민 정서를 넘어 자본의 논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 많다.

딜리버리히어로는 배달의민족과 비슷한 시기인 2011년 독일 베를린에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최대 주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자회사이고, 2대 주주는 영국 투자회사이다. 딜리버리히어로는 단순한 독일 자본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으로 인수합병을 통해 지금까지 독일, 영국 등의 35개 기업을 사들여 성장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딜리버리히어로가 이제는 자본의 힘으로 글로벌 회사로 발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기술과 더불어 자본에 의한 혁신성장을 추구할 때가 왔다. 원천 첨단기술이 취약한 우리나라가 자본의 글로벌화를 통해 외국 스타트업을 인수해 혁신성장에 편승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수익이 있는 곳은 어디건 찾아 간다. 그러나 자본의 생리는 독과점의 지대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딜리버리히어로가 현재 국내에서 동종업계 2위인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운영하고 있는데 1위인 배달의민족까지 인수하여 점유율이 90%를 넘을 때 수수료를 인상하거나 소비자 혜택과 서비스 질을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려면 최종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배달의민족이 딜리버리히어로와 합병해 혁신성장의 상징이 될 것인지 아니면 독점 자본의 괴물이 될지는 지금 이 시점에 알 수 없다. 그러나 미리 괴물이 될 것이라고 예단해 승인하지 않는 것은 혁신성장의 싹을 자르는 성급한 결정이다.

독점적 사업자가 시장에서 불공정행위를 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경쟁이고 또 하나는 사후제재다. 딜리버리히어로가 시장지배력을 악용해 불공정행위를 저지르면 시장에서 외면받고 새로운 혁신기업에 의해 도전을 받을 것이다. 정부도 개입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극단적으로는 기업분할까지도 명령할 수 있다. 외국에도 독점적 지위에 있는 플랫폼 회사가 많지만 불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착해서가 아니라 과징금과 제재가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도 혁신성장을 장려하려면 사전 규제는 완화하되 사후 불법행위는 엄벌에 처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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