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끝나지 않은 키코 사태

입력 2019-12-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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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근 금융부 기자

지난달 취재차 만난 조붕구 키코(KIKO·환헤지 통화옵션상품) 공동대책위원장은 지쳐 보였다. 키코 피해보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면서 휘청였던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11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묻고 취재하는 동안 그간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대화 중 무심코 나오는 침묵과 한숨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키코 사태는 일단 일단락됐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13일 키코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열고 판매 은행에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는 조정안을 분쟁조정 당사자인 은행 6곳과 피해기업 4곳에 보냈다. 은행과 기업 양측이 별도 기간 연장을 요구하지 않으면 다음 달 7일 키코 분쟁조정 최종 결과가 나온다.

다윗(키코 피해 기업)과 골리앗(키코 판매 은행)의 길고 긴 싸움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은행들이 키코 분쟁조정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뒤로는 ‘배임’이라는 프레임을 앞세워 배상에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키코 사태가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인 10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배상하면 주주 이익을 해치는 배임이라는 주장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배상금 규모도 부담이다. 분쟁조정안을 수용할 경우 4개 기업에 대한 배상 금액(255억 원)에 더해 나머지 피해 기업 145곳과도 자율 조정을 거쳐 2000억 원(추정치)을 배상해야 한다.

금감원은 은행과 자율협의체를 만들어 의견 조율에 나서고 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도 별도의 협상팀을 꾸려 은행권과 자율조정에 나선 상태다. 키코 공대위는 1조 원 이상 되는 금융 피해자 연대 참여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은행이 분조위 결정을 수용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금감원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은행의 배임 프레임에 대해 “(분쟁조정안이)은행에는 금전 손실이지만 반면 이를 해결하는 것은 은행 평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상대방은 고객”이라며 “이는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고, 배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1월 중에 키코 첫 분쟁조정 배상이 진행된다. 금감원이 지난 6월과 10월과 11월 세 차례에 걸쳐 분조위 개최를 약속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피해 배상안만큼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돼 피해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재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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