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성장률 하락세가 가파르다. 2%도 위태롭다. 명목성장률은 1.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6개 국가 중 34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0.5% 정도로 지난해(1.5%)에 비해 턱없이 낮다. 9월엔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1개월 연속 0%대 상승은 역대 최장기록이다. D의 공포가 고개를 드는 이유다.
취업자는 월평균 28만 명 정도 늘었다. 숫자는 늘었지만 일자리의 질이 문제다. 대부분 주당 17시간 미만이거나 재정이 투입된 60세 이상 단기 노인 일자리다. 11월 33만1000명 늘었지만 60대 이상이 40만8000명이었다. 노인 일자리를 빼면 마이너스다. 경제 허리인 40대 일자리는 49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했다. 제조업 일자리도 20개월째 줄었다. 최장기간이다. 40대와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1년 새 비정규직 근로자가 30만 명 정도 증가한 것은 ‘고용의 질이 좋아졌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수출도 부진했다. 13개월 연속 하강에 올해 10% 정도 감소했다. 두 자릿수 감소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9년(-13.9%) 이후 처음이다. 작년 돌파했던 60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설비투자는 7% 이상 감소하고 건설투자도 4% 준 것으로 보인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신용 강등이 잇따랐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에 따르면 올해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 수가 55개였다. 2017년 45개, 2018년 37개로 줄다가 올해 급증했다. 등급이 오른 기업 수는 35개였다. 등급이 오른 기업 수를 떨어진 기업 수로 나눈 등급상향배율은 0.64에 그쳤다.
경제 성적표는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주가는 한 나라의 경제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종합지표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올해 글로벌 증시는 날았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들은 20~3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유독 코스피만 7.67%에 머물렀다. 중국, 일본 상승률의 절반 수준이다.
서민 생활은 팍팍해졌다. 소득이 늘지 않으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 게다가 가구당 평균 부채가 7910만 원에 달한다. 소비 여력이 있을 리 없다. 경기 침체로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줄면서 고용이 부진해지고 소득이 줄어 소비가 감소하는 경제 악순환 고리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일본형 장기불황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경고도 나온다.
콕 집어 정부 탓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정부 리스크’도 부인할 수 없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의 3저 기조는 글로벌 뉴노멀이다. 저성장과 저물가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미중 무역갈등 등 불확실성이 커진 대외여건은 설상가상이다. 그렇다고 외부 탓만 할 순 없다. 정부의 잇딴 헛발질이 몰고온 역풍도 거셌다. 치밀한 사전준비 없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하강하는 경제에 가속도를 붙인 것은 정부였다. 한일 무역갈등을 촉발한 것은 일본이지만 결국 정부의 외교 리스크다. 미래 먹거리인 공유경제와 서비스 산업 혁신이 표 논리에 막혀 표류하는 상황도 정부 책임이 크다. 우리만 거꾸로 가는 탈원전 정책은 또 다른 리스크다.
국가 경쟁력 하락의 결정적 요인인 ‘노조 리스크’도 정부의 노동계 편향정책과 무관치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얼마 전 공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13위를 기록했지만 노동 분야는 최하위권이었다. ICT 보급과 거시경제 안정성은 1위였지만 노동시장은 51위였다. 노사협력은 130위로 앙골라 등 아프리카 최빈국과 동열이다. 정리해고 비용(116위)과 고용 해소 관행(102위), 임금 결정 유연성(84위) 등 고용 노동관련 분야는 모두 최하위권이었다.
올해는 경제만 하강한 게 아니다. 난장판 정치와 좌우로 갈라진 민심, 꼬일 대로 꼬인 남북관계, 삐그덕거린 외교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리더십은 실종됐다. 새해엔 달라져야 한다. 올해의 실수를 되풀이할 순 없다. 그러려면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부터 열성 지지자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영논리로 위기를 잠시 모면할 순 있겠지만 국민 신뢰를 상실한다.국민 과반의 반대 속에 임명한 조국 법무장관의 낙마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지자만 바라보는 정치는 끝없는 대결정치로 귀결된다. 니 편 내 편을 가르지 않는 온전한 소통과 경청이 그리도 어려운 일인가. 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