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관치, 여전히 팔팔하게 살아 있다

입력 2020-01-02 09:38 수정 2020-01-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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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금융부장

그 괴물이 역시나 꿈틀댄다.

금융회사, 특히 은행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감독을 먹고 사는 괴물이다. 그 괴물의 역사는 매우 깊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금융회사와 금융공기업의 수장은 임기와 상관없이 바뀌었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는 관행처럼 이뤄졌다. 오죽하면 모피아(재무부+마피아)와 같은 단어가 그 괴물의 대명사처럼 쓰였을까.

금융 시스템의 위기가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특성이 괴물의 먹잇감이다. 이로 인해 그 괴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법에 정해져 있지 않은 보이지 않는 규제로의 틀, 괴물이 그 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관치’라고 부른다.

만일 정부가 규제의 틀을 넘어 월권적 행태를 보인다면 이는 위법적 관치다. 금융당국이 보이지 않는 월권적 규제로 신뢰를 스스로 떨어트린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나 금융당국이 행하는 모든 간섭을 관치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시장의 합의인 법에 의한 규제 법치에 따른 금융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소 다르면서도 비슷한 얘기를 또 읊조린다. 최근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혼란에 빠졌던 차기 IBK기업은행장 자리를 놓고 관치가 새해 벽두부터 논란이 됐다. 그간 3번 연속 기업은행 내부인사가 은행장에 오르면서 더 이상 관치가 개입할 여지가 없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파장은 깊었다.

논란을 자초한 건 결국 제도인 듯싶다.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기업은행장이다. 다른 은행과 달리 임원추천위원회 등의 제도가 없어 정부 발표 전까지는 하마평만 무성했다. 제도를 수정하지 않은 이상 낙하산이란 관치금융 논란은 앞으르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장 자리를 놓고 관치금융으로 해석해야 할까. 정부와 금융당국이 법치라는 틀에서 벗어나 월권적 권한을 행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에 간섭하는 것은 분명 관치다. 시장에서는 각종 협회장 인선에 관여하는 것도 월권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 권한이 있다면 법치다. 법의 틀이 틀렸다면 법을 고쳐야 할 일이다.

핵심은 이 논쟁과는 별개인 듯싶다. 우리가 기업은행장 선임과 관련해 관치 논란이 아닌 자질에 주목해야 한다. 기업은행 노조가 기업은행장 하마평에 거론되는 인사들을 대상으로 기획재정부 출신 모피아, 금융 분야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고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올해 금융산업은 정부의 대출규제와 경기둔화로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 금융환경을 둘러싼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형국이다. 금융지주 수장들의 신년사 이면에는 금융산업의 심각한 위기감이 키워드다. 저마다 안정적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근본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주요 금융회사의 경영권을 놓고 금융당국 간에 관치가 가장 민감한 시장의 현상으로 떠오를 것이다. 지난해 시중은행 채용 비리 재판이 진행됐고,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저마다 세밑에 ‘마이 웨이’를 선언하듯 최고경영자(CEO)의 연임을 확정했지만, 금융당국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민간 금융회사의 경영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원칙이다. 이런 메시지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 금융산업의 역사에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공적인 목적을 배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요구하고, 수용할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관치 때문에 금융회사 수장이 수시로 바뀌고 경영 공백, 그리고 임원 인사조차 경영의 자율성이 무시되는 현상을 경험했다. 금융회사도 언론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다. 최고경영자가 어떤 경영 철학을 담아도 금융비전은 말 그대로 비전일 뿐이다. 이처럼 관치가 금융산업을 제자리걸음을 만드는 한 또 다른 위기가 우리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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