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점프 코리아’②] “대립의 끝은 공멸… ‘K-팝’같은 ‘K-노사문화’ 만들자”

입력 2020-01-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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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ㆍ북 도발ㆍ일자리 위기…퍼펙트 스톰 마주한 한국경제

회사는 투명경영으로 신뢰 얻고…노조도 투쟁 멈추고 절제 필요

민주화 이후 30여 년, 노사 간 불신과 갈등은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한국의 노사협력 수준을 세계 130위라 평가했다.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수준까지 추락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퍼펙트 스톰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 북한의 예측 불가능한 행태와 도발, 경제성장률의 추락, 일자리 위기, 4차 산업혁명 등 하나하나가 나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한 도전들이다. 이러한 도전을 헤쳐 나가기 위한 선결 조건은 노사협력이다. 불신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해결하지 못하면 근로자와 사용자, 국가 경제가 브레이크 없이 공멸의 내리막길로 질주하지 않을까 두렵다.노사관계가 턴어라운드하기 위해서는 첨예한 제도적 쟁점을 해결하는 보다 지혜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민주화 이후 노동권 강화, 비정규직 입법, 노동시장 개혁 등을 둘러싸고 노사 간에, 때로는 노정 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여 왔으며, 지금도 근로시간 단축,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등 제도적 쟁점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와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고용의 안정성과 관련해 제도 개혁의 요구가 제기될 것이고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개혁과 같은 제도 관련 쟁점을 다뤄온 불변의 방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종전의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대타협 추진이었다. 이 위원회는 노사정의 최고 책임자들이 대화하고 타협하는 조직이다. 형식도 그럴싸하고 취지도 좋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 민주노총은 아예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제도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타협 과정에서 불신과 갈등이 오히려 증폭되기도 했다.

이제 대화와 타협의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첨예한 갈등을 합리적으로 풀어나간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몽플뢰르 시나리오 콘퍼런스다. 남아공은 오랫동안 극심한 흑백 간 인종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몽플뢰르 콘퍼런스를 통해 양보와 타협, 점진적 발전을 내용으로 하는 플라밍고 시나리오를 선택함으로써 인종 간 화해와 사회 통합을 이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콘퍼런스에 참여한 각계 대표들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아니라, 원하는 바와 상관없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 하는 시나리오 대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불가능해 보였던 인종 간 갈등 해소를 위한 타협 방안을 찾아낸 것이다.

다음으로 노사관계의 토양이 되는 가치, 의식, 관행, 즉 노사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불신, 불통, 비타협, 상대방 탓하기, 나만 살기 등의 의식과 관행을 신뢰, 소통, 타협, 상생의 새로운 문화로 혁신해야 한다. 그리하여 ‘케이(K)-팝’처럼 자랑스러운 ‘K-노사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적인 노사문화 혁신을 위해 사용자는 투명 경영을 통해 신뢰를 얻고, 노사협의 및 노동조합과의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며, 경영 성과를 함께 나누는 상생 경영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도 바뀌어야 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투쟁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에 항거하듯 투쟁을 능사로 여긴다면 시대착오다. 이제 조합원 200만 시대가 열렸고 그만큼 노동조합의 책임이 커졌다. 힘이 강해진 만큼 선진 노동운동처럼 힘의 행사를 절제할 수 있는 성숙한 노동운동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새로운 노사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파트너십을 발전시켜야 한다. 생산성 향상, 교육훈련, 일터 혁신, 노사의 사회적 책임 실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노사가 함께 설계하고 공동으로 운영하여 협력을 증진시키고 공동체적 결속을 강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사의 변화와 혁신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기법, 새로운 노사문화 실행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보급하는 한편 현장 노사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교육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공정하고 엄정한 법치를 실현함으로써 노사관계의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고, 노사 모두에게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약력>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이원덕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1951년생, 미국 보스턴대학교 경제학박사.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삼성경제연구소 상근고문, 한국노사관계학회 회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등 역임.

-저서 ‘한국의 노동’, ‘21세기 국가발전 전략’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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