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월부터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차 판매를 허용했지만, 이에 대비한 보험제도 정비가 지연되고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 현행법에는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때 책임 소재를 가릴 법적 근거가 없다.
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부분 자율주행차 안전기준을 도입함에 따라 오는 7월부터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차 판매가 허용된다. 레벨3 자율주행 단계는 지정된 작동영역 안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차로를 유지한 채 주행할 수 있는 단계다.
이처럼 하반기부터 자율차가 도로를 달리게 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손해배상 관련 입법은 여전히 보완되지 않고 있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법'에는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조항 자체가 없다. 자율차가 대인ㆍ대물 사고를 내면 책임을 가릴 때 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 셈이다.
자율주행차가 고도의 기술력을 갖췄다곤 하지만, 해외 사례를 볼 때 사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2016년 5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자율주행 중이던 레벨3 수준의 테슬라 모델S가 트럭과 충돌해 운전자가 사망했고, 2018년 3월에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레벨4 수준으로 운행하던 우버의 차량이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했다.
미국 교통 당국이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으며 조사가 일단락났지만, 이후 자율차 시대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최원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5일 'KIRI 리포트'에 게재된 '모빌리티 생태계 변화와 보험산업' 보고서에서 "자율주행자동차 사고에 대한 배상책임 문제가 보험업계와 자동차업계에서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입법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5월 자율주행차 관련 내용을 담은 자동차손해배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자율차와 관련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1차적인 책임은 운전자에게 부여하고, 자체 결함이 사고 원인이면 보험회사 등이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아울러 '자율주행자동차사고 조사위원회'를 신설해 자율차가 낸 사고를 조사할 별도의 기구를 구성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 법안을 검토한 국토교통위원회 전문위원도 필요성을 인정했다. 박희석 전문위원은 "올해 레벨3 수준 자율차의 상용화에 대비하려는 취지로 필요한 면이 있다"며 "독일과 영국, 일본도 이 개정안과 유사한 방향으로 보험 관련 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발표한 기준에 '자율차가 시스템 작동영역을 벗어난 경우 운전자가 운전하도록'하는 조항이 있지만, 입법으로 규정해 논란의 소지를 줄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주요 선진국은 본격적인 자율주행차 운행에 앞서 관련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영국은 자율차 사고도 운전자의 보험으로 보상토록 하는 법안을 2017년 마련했고, 일본은 지난해 관련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국회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말 '대안반영 폐기' 처리됐다. 절차대로라면 국토위가 유사한 법안을 묶어 대안을 새로 내야 하지만, 지금까지도 발의되지 않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 관계자는 "본회의에는 검ㆍ경 수사권 조정과 유치원 3법 등 쟁점 법안이 올라있고, 국회 자체도 이미 총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선거가 끝날 때까지 법안을 논의할 소위가 개최될 기약이 없다"고 전했다.
국회가 쟁점법안을 놓고 공방 중이고, 총선전에 돌입한 만큼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늦어도 지난해 12월 중 처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라며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앞서 하루빨리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