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ㆍ대출ㆍ청약 규제를 망라한 12ㆍ16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이 지역별로 양극화 현상으로 보이고 있다. 고가 주택이 많이 몰려 있는 강남권은 매수세가 끊기고 가격도 하락하고 있는 반면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북권은 가격 상승세가 뚜렷하다. 12ㆍ16 대책 이후는 강북권이 서울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업계에 따르면 강북지역에서는 9억 원 이하의 아파트 실거래가가 몇 주 사이에 수천만 원 오르고 있다. 강북 14개 구 중에서도 강북ㆍ광진ㆍ도봉ㆍ노원ㆍ동대문구 등에서 12ㆍ16 대책 이후 실거래가가 대폭 오르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강남 고가아파트 가격이 오를 때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였던 강북 주택시장이 서둘러 ‘갭 메우기’(가격 따라잡기)에 나선 것이다.
◇강북권 9억 이하 아파트값 들썩
강북구 미아동 경남아너스빌 전용 59㎡형은 12ㆍ16 대책 발표 전인 작년 12월 13일 4억8000만 원에 거래됐는데, 해를 넘기는 사이에 2000만 원이 올라 이달 초에 5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광진구 광장동 현대3차 전용 74.92㎡도 대책 발표 후 한 달여 만에 1억 원 넘게 올라 지난달 말 9억2500만 원에 거래됐다.
반면 ‘부동산 불패’를 몸소 보여줬던 강남권 고가아파트 매매시장은 12ㆍ16 대책 이후 정체기에 들어갔다. 하룻밤 사이에 수천만 원 뛰던 과열장 때와 비교하면 딴판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97㎡는 대책 발표 전인 작년 12월 11일 21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그러나 대책 발표 당일 매매가가 3억7000만 원 빠진 17억8000만 원으로 떨어졌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12ㆍ16 대책 후에 나타난 양극화 현상은 그간 지적해왔던 ‘규제의 역설’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며 “대출 규제를 피한 9억 원 이하 아파트가 키 맞추기를 할 수 있도록 오히려 (정부가) 조장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12ㆍ16 대책을 통해 시가 15억 원을 초과하는 집에는 아예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고, 9억 원 초과 주택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20%만 적용하도록 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초고가 주택의 매물이 나오면서 (고가 주택의) 호가가 꺾이는 현상은 2018년 9ㆍ13 대책보다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9억 원 이하 아파트값은 오르고, 15억 원 이상 가격은 정체되는 상황이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하반기부터는 전반적인 경기 상황과 맞물려 시장 상황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내집 마련 엄두 못내는 수요 몰리며 전셋값 급등
아파트 매매시장에서 갈 곳을 잃은 수요자들은 전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자사고ㆍ특목고 폐지 등 교육제도 개편으로 명문학군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서울 강남ㆍ양천구(목동) 등 일부 지역의 전셋값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 12ㆍ16 대책 풍선효과까지 더해져 서울 전세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작년 12월 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0.23%로 2015년 11월 이후 최대폭으로 올랐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2차 전용 68㎡형 전셋값은 작년 11월 3억 원대 후반에 거래되다가 작년 말에는 4억2000만 원까지 올랐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당분간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KB부동산이 조사한 전세가격 전망지수를 보면 서울의 작년 12월 수치가 117.3(100을 웃돌수록 상승 전망 비중이 큼)을 기록했다. 2016년 1월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치다.
전셋값이 오르면 피해는 고스란히 전세 실수요자에게 돌아간다. 정부의 고가주택에 대한 수요 억제책이 전셋값만 부추겨 결국 서민의 피해를 유발하는 셈이다.
송인호 부장은 “대출 규제와 보유세 인상 등으로 집을 사는 대신 전세로 눌러앉는 수요도 많아졌다”며 “전셋값 상승은 장기적으로 매매가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셋값 상승 현상은)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일반 수요자들에게 잠재적인 폭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12ㆍ16 대책이 원래 목표인 시장 안정화 방향으로 가려면 공급 시그널이 같이 나와야 한다”며 “공급이 부족하다는 불안 심리를 제거하는 것이 관건이고, 시장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서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조성을 통한 수요 분산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지희ㆍ박종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