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CES까지 와서 정치하세요?

입력 2020-01-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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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차장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ic Show) 2020'이 막을 내렸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탓에 올해 행사에선 중국 기업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한때 수백 곳에 달했던 중국 참가기업이 올해는 고작 40여 곳에 머물렀으니까요.

거꾸로 우리 참여기업이 380곳을 넘어서면서 한국이 최다 참여국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숫자는 미국 기업(360곳)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CES 행사 분위기는 경기도 어디쯤에서 열리는 전시 컨벤션과 비슷했습니다.

이번 행사의 특징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올해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그룹 등이 부스를 크게 마련하고 미래 사회를 주도할 기술력과 사업전략을 공개했습니다.

산업 장르를 파괴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대거 참여했고, 전자 IT 기업들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대거 공개했습니다.

적어도 라스베이거스 행사장에 머물러있는 시간만큼은 ‘2025년’의 삶을 미리 체감하기에 충분했지요.

우리 기업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정부 부처와 관계기관까지 앞다퉈 라스베이거스에 모여들었습니다.

일부 경제단체는 “사상 최대규모의 참관단을 꾸렸다”며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기도 했으니까요.

급변하는 글로벌 IT 기술과 그 추세를 살펴볼 수 있는 만큼, 이를 통해 미래 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담겨있었습니다.

문제는 국회 특정 상임위 국회의원 등이 대거 모이다 보니 라스베이거스에는 또 하나의 정치판이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CES 현장에서 만난, 정부 부처를 출입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한 사무관은 “혹시 00당 000 의원이 오늘 오후에 어느 부스에 가시는지 아느냐”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손에 쥔, 꼬깃꼬깃하게 접은 메모지에는 CES 참관 정치인 및 단체장의 이름과 동선이 빼곡하게 메모돼 있었습니다. 얼추 동선을 따져보니 제가 쥐고 있는 전시 일정표와 전혀 무관해 보였습니다.

CES 현장의 정치적 행보는 시작 전부터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CES에 참관할 것이라는 소문이 쏟아지자 정치권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 이른바 ‘얼굴이 신분증’인 정치인들도 정당 관계자와 경제단체장과 미팅 일정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만나도 될 텐데 굳이 먼 미국까지 날아와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해외’라는 특수성을 십분 활용하겠다는 전략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점심이나 저녁 식사 직전, 특정 부스에 정치인들이 몰린다. 여기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식사자리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짜기도 한다. 한국보다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일부 정치인은 주요 기업에 “몇 시에 전시장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과도한 의전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행사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 정치 행보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씁쓸함을 남겼습니다.

현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뛰고 있는 기업 관계자를 불러놓고 과도한 의전을 요구하는 정치행보도 분명 사라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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