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한중일 디지털 산업협력과 중국의 야심

입력 2020-01-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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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 소장

지난해 12월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3국은 향후 동북아 미래 공동 번영과 발전을 위한 ‘10년 3국 공동비전’을 채택했다. 핵심은 글로벌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 및 디지털 혁명과 산업 대전환의 급속한 흐름 속에서 향후 10년 한·중·일 3국 간 기술혁신 및 교통물류 등 인프라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3국 간 협력을 바탕으로 주변 국가와 지역으로 확대해 나가는 이른바, ‘3국+X(Trilateral+X)’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한 중국은 한·중·일 공동 주최로 2020년을 ‘한·중·일 과학기술 혁신 협력의 해’로 선언하여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에 공동 대응하자고 제안했고, 한·일 양국도 이에 뜻을 같이했다. 특히, 한·중·일 3국 간 핀테크 및 모바일결제 협력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산업협력이 강조되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바로 이틀 후에 한·중·일 3국 과학기술장관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2012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지 거의 8년 만에 3국의 과학통신기술 장관들이 함께 모였으니, 그만큼 의미가 남다르다. 이제 정말 한·중·일 디지털 산업협력이 본격화될 수 있는 것인가?

그 중심에는 지난 4년간 계속 논의되어 온 한·중·일 디지털 싱글마켓(Digital Single Market·이하 ‘DSM’) 구축이 있다. 한·중·일 DSM 첫 논의는 2015년 1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시작되었다. 국가 간 서로 다른 전자상거래 규정을 통합해 3국 국민이 사실상 하나의 전자상거래 시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디지털 싱글마켓 사업 모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러나 야심차게 시작한 DSM 논의는 사드 배치에 따른 한·중 간 마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따른 한·일 간 외교 마찰로 인해 본격적인 협의도 진행되지 못했다. 다행히 2017~2018년 2년간 3국은 각각 지정 수행기관을 선정해 DSM 공동연구를 시작했지만 중·일 간 의견 차이와 지속된 한·중 간 사드 논쟁으로 인해 구체적인 결과물은 도출하지 못한 채 향후 사업 진행을 위한 전체적인 방향 로드맵 정도의 공동 연구만 진행되었다. 최근 한·중·일 3국 협력을 통한 ‘차이나 스탠더드’를 꿈꾸는 중국의 야심과 한·일 양국의 성장동력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향후 DSM 구축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한·중·일의 서로 다른 지불결제 수단 및 배송물류, 통관, 소비자보호법 등과 관련된 규제와 표준을 통합해 3국 시장을 하나로 묶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조율 가능한 규정과 제도부터 통합하는 단계별 한·중·일 DSM 구축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소비 관행과 규제, 통관물류, 소비자 정보보호, 결제시스템 등 국가 간 전자상거래 관련 방대한 어젠다를 크게 3단계로 나누어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우선 1단계는 통관물류 관련 표준화된 규범과 시스템 도입을 위한 공동 협의가 필요하다. 이 또한 먼저 3국 간 시범 도시를 각국이 선정하여 운영한 뒤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한다. 2단계는 교환 및 환불 등 3국 간 전자상거래 관련 소비자 보호 규정을 통일하는 문제이다. 또한 3국 간 전자상거래에서 분쟁 발생 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 3국 간 분쟁 관련 규제의 범위 및 수준 등이 서로 상이한 상태이나 현재 이를 보완하기 위한 온라인 분쟁해결(ODR·Online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등 대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3단계는 단일 전자화폐 통합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향후 한·중·일 DSM이 활성화되려면 현재 각기 다른 지불결제 시스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국가 간 수수료 수익배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자국 결제 시스템에 익숙해진 각국 소비자들이 새로운 단일 전자화폐에 적응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 사안인 만큼 충분한 협의와 논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문제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 단일화 작업을 두고 향후 3국 간 치열한 협상 경쟁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중국은 8억 명이 넘는 알리페이 및 위쳇페이 등의 소비자와 하루 10억 건이 넘는 거래 규모를 내세우며 단일 전자화폐 표준화에 중국식 표준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전 세계 전자상거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국가로, 2019년 모바일 거래액이 30조 달러(약 3경5900조 원)가 훨씬 넘는다. 또한 작년 하반기부터 중국 정부는 한·일 양국보다 먼저 디지털 화폐(DCEP) 발행을 공식화함으로써 단일 전자화폐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태다. 중국 정부의 목적은 분명하다. 이미 중국 사회가 현금 없는 사회(Cashless)로 접어든 만큼 정부 주도의 디지털 혁명을 견인할 필요도 있으며, 미국을 제치고 디지털 화폐 패권을 쥐고 향후 위안화의 국제화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한·중·일 DSM 구축은 3국 간 디지털 산업협력의 무게 중심추가 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우리 소비재 기업들이 15억 명의 무한한 시장으로 뻗어 나갈 새로운 기회와 플랫폼이 될 수 있으며, 3국 간 상품과 서비스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점과 해결 방안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될 경우, 결국 시장과 규모의 논리에 의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다. 좀 더 촘촘히 꼼꼼히 시스템과 콘텐츠를 살펴봐야 한다. 한·중·일의 디지털 산업협력과 교류는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한·중·일 3국이 동상삼몽으로 끝나지 않고, 함께 상생할 수 있는 혜안이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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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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