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구로동 철도차량기지 서쪽에 들어선 1400가구 규모의 구로주공1차 아파트. 지난달 7억8700만 원에 거래된 전용면적 84㎡형의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이달 초 8억5000만 원 수준으로 치솟더니 최근 며칠 사이 다시 9억5000만 원까지 껑충 뛰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정부의 대출 규제 여파에 중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갭 메우기'(가격 따라잡기)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차량기지 이전과 재건축 호재를 안고 이 아파트 매매값이 다락같이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16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구로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0.11% 올랐다. 영등포구와 나란히 서울에서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했다. 같은 주 부동산114 주간 시세 통계에서도 구로구는 0.20% 올라 마포·노원·양천구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 여파로 강남권의 집값 상승률이 상위 지역에서 멀어진 반면 중저가 주택이 밀집한 비강남권이 집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며 "요즘 구로구가 규제 풍선효과의 대표 수혜지로 떠오른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9억 원이 넘는 주택의 담보대출 규모를 20% 수준으로 쪼그라뜨린 반면 9억 원 이하는 기존의 40%를 그대로 유지해 상대적으로 대출을 자유롭게 했다. 이에 정부가 앞장서서 중저가 아파트 단지들이 갭 메우기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구로구에선 지난달 말까지 거래가가 9억 원을 밑돌던 구로동 '신도림 태영타운' 전용 84㎡형 호가가 현재 9억8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개봉동 현대아파트 전용 84㎡의 최근 시세는 7억 원 수준이다. 이 아파트의 지난해 최고 실거래가는 6억5700만 원이었다.
지하철 1호선 구일역 일대 아파트값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철도차량기지 이전 호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최근 '구로차량기지 이적지 도시관리계획 결정안'을 조건부 가결했다. 구로구 아파트값 저평가 원인 중 하나였던 철도차량기지에 대한 개발 계획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협의팀을 꾸리는 등 차량기지 이전에 대한 실무에 나서면서 집값 상승분이 이미 선반영됐지만, 이번 행정 결정이 또다시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시는 서남권 경제 중심지역인 G밸리 산업과 연계해 지식산업센터, 비즈니스 호텔, 컨벤션이 들어설 수 있도록 이 부지를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묶어 관리할 방침이다. 다만 차량기지가 이전하는 광명시의 반대가 심해 사업이 당초 계획보다 지체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철도차량기지 이전 호재에 기지 인근 현대연예인아파트 전용 84㎡ 매매시세는 6억5000만 원까지 올라섰다. 지난해 11월 실거래가(5억6000만 원)보다 1억 원 높은 값이다.
특히 재건축 호재까지 안고 있는 구로주공1차 아파트값 상승세가 가파르다. 작년 12월 7억8700만 원에 거래되던 전용 84㎡형은 현재 최고 9억500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1400가구 규모의 구로주공1차는 1986년 지어져 이미 준공 30년을 훌쩍 넘었다. 정비구역지정 신청을 위한 주민동의율도 60%를 넘어선 상태다.
구로주공1차가 오르니 가구 수가 적어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았던 인근 구로주공2차도 '키 맞추기'(가격 따라잡기)에 나섰다. 지난달 7억 원에 거래된 전용 64㎡형이 현재 7억5000만 원을 호가하고 있는 것이다.
구로동 K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워낙 없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며 "자고 일어나면 호가가 뛰니 우리도 입이 벌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