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의 소비자 세상] ‘유방보형물’ 암 유발, 전자의무기록·클라우드 구축 기회로

입력 2020-01-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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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 확대술을 받은 소비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글로벌 기업 엘러간의 ‘거친 표면’ 보형물로 유방 확대술을 받았던 소비자에게 암 확진 판정이 났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대한성형외과학회가 세밑에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국내에서 첫 암환자가 보고된 뒤 두 번째다.

이번에 확진받은 ‘유방 보형물 연관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BIA-ALCL)’은 면역체계와 관련된 희소암으로, 유방암과는 별개의 질환이다. 유방 크기가 변화하고, 피막에 덩어리가 발생하거나 피부 발진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해당 환자는 40대 여성으로 2013년 엘러간의 거친 표면 보형물을 이용한 유방 확대술을 받았다. 최근 가슴에 부종이 발생해 대학병원에서 병리검사를 한 결과 유방 보형물 연관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으로 최종 진단을 받고 식약처와 대한성형외과학회에 보고됐다.

이 환자는 보형물 제거 등 필요한 치료를 받고, 지난해 8월 첫 환자 발생 이후 식약처가 마련한 거친 표면 유방 보형물 이식환자에 대한 보상대책에 따라 의료비 전액을 엘러간으로부터 지급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엘러간의 거친 표면 유방 보형물 삽입술을 시행한 의료기관 중에서 수술 뒤 폐업한 의료기관의 환자들에게는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된 문제의 유방 보형물은 12만여 개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시술 소비자 1명이 2개의 유방 보형물을 삽입한 것으로 계산하면 환자 수는 총 6만여 명으로 식약처는 추정했다.

20일 기준 식약처는 이 제품을 취급한 약 1200개 의료기관 중 80%인 997개 의료기관을 통해 엘러간의 거친 표면 인공유방을 이식한 총 4만6667명의 환자를 파악했다. 또 폐업한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국세청과 관할 보건소를 통해 환자 정보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필자가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엘러간 거친 표면 인공유방을 취급한 국내 약 1200개 의료기관 가운데 폐업한 의료기관이 431군데나 됐다. 이에 식약처는 폐업한 431곳을 확인하고, 관할 보건소 70곳에 폐업 의원들의 진료기록부를 요청했다. 그 결과 진료기록 소실, 병원 개설자 연락 불가, 보관기한 초과로 현재 17개 병원에서는 기록 확인이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1만3000여 명의 환자에게는 엘러간 유방 보형물 관련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는 환자 안전을 위해 진료기록부를 10년간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하며, 의료기관이 휴업·폐업할 경우 관할 보건소에 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보건 현장에서는 이 규정이 철저히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의료기관과 보건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부 보건소는 진료기록을 보관할 공간이 없다며 진료기록을 가져오면 폐업 신고를 받아주지 않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가 일하는 녹색소비자연대는 환자 안전을 위해 다수 소비자가 관련된 의료사건 발생 시 환자들에게 사건 경위와 대응 방안을 알려야 함에도 환자 추적이 어려워 고지가 안 된다면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보건복지부 국가환자안전위원회에 대책을 촉구했다.

정부는 현황 파악을 위해 전국 보건소의 휴업·폐업 병원 진료기록 보관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특히 성형외과의원들의 휴업·폐업이 잦은 서울 특정 자치구 보건소는 더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보건소의 진료기록 보관 공간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구축 의무화를 제안한다. 이를 통해 전국의 보건소가 휴업·폐업 의료기관의 진료기록을 클라우드에 보관하도록 시스템을 갖추면 유방 보형물 암 유발사건과 비슷한 환자 안전사고가 일어날 경우 환자 추적이 수월해진다.

앞으로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는 이 문제를 소비자단체, 의료계와 함께 여론을 수렴해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 시 발생하는 예산 일부 재정지원 등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의료계가 전자의무기록 시스템과 클라우드 환경을 갖추는 데 왜 정부 예산을 지원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텐데, 환자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는 적극적인 사고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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