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홍남기 부총리의 ‘Back to the 1999‘

입력 2020-0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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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연 금융부 기자

“여보세요? 잘 안 들려!”

애인 몰래 소개팅할 때, 학원 땡땡이치고 PC방 갈 때, 말없이 언니 신상을 꺼내 입고 나왔을 때, 아빠 지갑에서 배춧잎 한 장 빼왔을 때, 형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지폐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몽땅 털어 왔을 때, 어김없이 휴대폰이 진동한다. 우리는 신기하게 주머니 진동만으로 발신자가 누군지 직감할 수 있다. 그럴 때 ‘안 들려’ 치트키로 방어하던 시절이 있었다. 입으로 “지직” 소리를 내며 신호 불량이라는 변명을 내세워도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기자를 ‘Back to the 1999’ 시절로 소환했다. “여보세요? 잘 안 들립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홍남기 부총리의 어색한 ‘여보세요’ 동어 반복 때문이었는지, 통화불량이라고 하기엔 너무 깨끗한 그의 음질 때문이었는지 안 들린다는 말이 굉장히 생경하게 느껴졌다. 기자라는 것을 밝히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오는 ‘안 들려’ 치트키에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네?”라고 되물었다.

‘안 들려’ 치트키는 이번 문재인 정권의 국정 철학과 매우 유사하다. 대선 후보 시절 낙하산 근절을 약속했음에도 왜 3대 국책은행장은 전부 관피아로 임명했는지, 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업고 대통령이 됐음에도 왜 계속된 인사 논란에 묵묵부답인지, 잡히지 않는 부동산 시장과 살아나지 않는 경제 속에서 내놓는 낙관적 전망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계속되는 언론의 질문에 청와대는 ‘안 들려’로 일관하고 있다.

‘안 들려’ 치트키가 필요한 경우는 보통 뒤가 구릴 때다. 내가 당당하고 꿀릴 것이 없을 때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이 들린다. 상대의 작은 공격에도 언제든 반박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가 무언가 숨기는 것이 없는데도 ‘안 들려’ 치트키를 썼다면 그 배경은 두 가지다. 그가 문 정부의 국정 철학을 철저하게 따르는 능력 있는 관료이거나, 혹은 그날 타임머신을 타고 1999로 날아갔거나. 기재부 공무원 누구라도 홍 부총리에게 물어봐줬으면 한다. “언제까지 안 들릴 예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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