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의 중구난방] 사외이사 임기 제한, 꼭 지금이어야 하나

입력 2020-01-2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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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풀이 부족한 상황에서 심사숙고해 후보군을 추리고 수차례 부탁해 어렵게 선임한다. 임기를 제한하는 데다 민감한 개인 정보까지 공고하도록 해 신규 선임은 물론 임기가 남은 사외이사의 연임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 당국이 법으로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겠다고 나서면서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상장사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주총을 불과 두 달가량 앞두고 기존 사외이사의 재선임이 불가능해지면서 새로운 후보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서다.

사외이사 제도는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직후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방지하려고 도입됐다. 기업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킴으로써 객관적인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 상태를 감독하고 견제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제도 도입 목적이 퇴색한 지는 이미 오래다. 대표적인 것이 ‘거수기’ 논란이다. 사외이사는 방만ㆍ부실경영 감시와 감독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경영진이 내건 안건에 기계적으로 찬성표를 던져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공시 대상 대기업집단 250개 상장사의 주총 안건을 분석한 결과 2018년 5월 이후 1년간 이사회 안건 6722개 중 부결된 게 3건에 불과했다. 오죽하면 관행처럼 여겨지던 찬성표를 대신 일부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졌다는 게 화제가 됐던 시절도 있었다.

정부의 상법 시행령 개정을 촉발한 사외이사 임기와 출석률 문제도 있다. 기자는 과거 사외이사 관련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거수기’ 노릇조차 외면하는 사외이사를 수두룩하게 접했다. 출석률이 0%임에도 20년 넘게 연임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해당 상장사 대주주와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또 출석률이 5% 미만임에도 보수로 수천만 원을 받는 사외이사도 적지않다. 사외이사가 유력 정관계 출신이거나 대주주와 인연이 있는 경우 제도의 취지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로비스트’로서의 역할을 기대해 사외이사를 선임해 왔던 경제계의 잘못된 관행이 22년간 쌓여 법 개정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계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유예 기간도 없이 갑작스레 임기를 제한하는 것이 옳은지는 의문이다.

경제계는 대ㆍ중ㆍ소 상장사가 내년까지 718명의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한다 주장하고, 이에 대해 법무부는 회사 한 곳당 1.3명꼴로 기존에 한 회사당 신규 선임돼온 사외이사 수와 큰 차이가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다만 기업 간 선호에 따른 인력 대란이 불가피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아무래도 대기업보다 보수 등 여러 면에서 취약한 중소ㆍ중견 상장사의 사외이사 구인난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아울러 사외이사의 겸직 위반도 늘어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상법에서는 이해 충돌의 문제를 제한하기 위해 해당 상장사 외에 2개 이상 다른 회사의 이사ㆍ집행임원ㆍ감사로 재임 중인 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어렵게 어렵게 사외이사로 선임해도 기존에 2곳 이상의 회사에 이사 등으로 재임 중이면 법을 위반해 사외이사직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사외이사와 경영진의 유착, 독립성 문제가 임기만 제한하면 개선될지도 의문이다.

경제가 어렵다. 민간기업의 이사회 구성에 간섭해 기업 경영의 독립성을 훼손함으로써 결국은 기업의 활력은 물론 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정부는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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