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떠나라, 그곳이 어디든 - 여행은 모험이다!

입력 2020-01-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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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현대사회에서 고향이나 나라를 떠나 먼 곳을 여행하는 것은 취향을 넘어서서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떠나려는 사람들 덕분에 세계의 주요 공항 터미널이나 항구의 대기실, 철도역의 플랫폼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인파로 붐빈다. 지난 한 해(2019년) 동안 우리나라를 찾은 외래 관광객은 1750만 명이다.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은 21조 원이 넘고, 생산유발 효과는 46조 원에 이른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래 관광객이 곧 2000만 명을 넘을 예정이다. 하지만 해외로 떠난 국내인은 2016년에 이미 2200만 명을 넘어서고 3000만 명인 시대로 들어섰다. 관광의 활성화를 통한 더 많은 외래 관광객의 유치는 미래 성장동력의 중요한 부분이다. 관광은 현대국가에서 어엿한 산업의 한 부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다.

여행은 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는 데서 시작한다. 문은 세계를 집 안과 집 밖으로 분리하고, 공간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한다. 문을 나서는 순간 이동성이 증가하고 정신의 역동성은 활발해진다. 문은 닫혀 있을 때는 벽이다. 문은 열릴 때 비로소 자유를 약속한다. 문이 약속하는 것은 폐쇄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이동하는 자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다. 여행과 관광은 집을 떠나서 어디론가 간다는 점에서 닮았다. 둘 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가기 위해 월경(越境)을 한다.

관광객에겐 언제나 목적지가 중요하다. 관광객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여행자에게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가 중요하다. 여행은 경험이라는 가치를 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관광객은 점에서 점으로 이동하며 이국의 정취에 취하고 낯선 음식을 사 먹으며 기념품을 사들이고 장소 이동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긴다. 관광객에게 사진 찍기는 존재 증명의 한 방식이다. 당신이 관광객이라면 이동 중에도 집이나 사무실 같은 거점 장소와의 유대를 소홀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여행 중에도 토지나 주택 같은 부동산, 예금 잔고, 사모펀드, 금리의 변화, 임대소득 따위를 꼼꼼하게 챙긴다.

관광이 풍경을 기분 전환의 목적으로 소비한다면 여행은 풍경을 경험의 범주로 끌어들인다. 관광객은 장소를 스쳐 지나가지만 여행자는 장소를 경험과 변화를 위한 거점으로 삼는다. 여행자는 그 장소로 녹아들면서 동시에 장소가 내 속으로 스미도록 한다. 반면 관광객은 집을 떠나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갈 여정을 계획한다. 관광객의 여정은 언제나 시작과 끝이 맞물린다. 관광객은 떠나온 지점으로 안전한 귀환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잘 짜인 일정과 안전을 선호하며 혼자가 아닌 여럿으로 움직인다. 관광객은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떠나는 사람이다. 그들은 어떤 경로에 있든지 나날이 반복되는 익숙한 삶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지칠 줄 모르고 수없이 되풀이한다. 그들이 여행사가 권유하는 단체 관광을 선호하고, 위험이 따르는 일체의 모험을 기피하는 이유는 여행의 목적이 오직 안전 귀환에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떠나기 위해 떠나는 행위다. 가벼운 기분 전환과 익숙한 시공간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여행의 동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여행자는 애써 자기 돈을 써가며 홀로 있음에 탐닉하며 고독과 시련을 구한다. 철학자 니체의 ‘자라투스트라’가 그랬듯이 여행자는 “오, 고독이여! 너 나의 고향 고독이여! 눈물 없이는 너에게 올 수 없을 만큼 너무 오랫동안 나는 거친 타향에서 살았다”라고 말한다. 거친 타향에서 새 삶을 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도시 생활의 불안정성, 일상의 반복과 지루함에 대한 보상이다. 여행의 보상이 낯선 곳에서의 고독이라는 점에서 일상의 창조적 파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느 날 당신은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당신을 새롭게 빚는다. 당신은 낡은 존재를 벗고 새로운 생성에 도달하려고 한다. 여행의 본질은 낯선 사람,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다. 여행은 세계의 낯섦과 부딪치는 모험이다. 모험의 본질은 삶을 바꾸려는 욕망이고, 존재 안의 숨은 낯선 역동성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모험은 우리 존재 안의 낯선 몸이다”라고 말한다. 모험은 다양한 개체들로 살기, 즉 어제까지 지속되던 삶의 전환과 변신을 위한 투쟁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는 변신 ― 너는 짧은 기간 내에 다양한 개체들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끊임없는 투쟁이다.” 새 삶을 살려는 자는 변신을 위해 자기를 미지의 시공 속으로 던져야 한다. 여행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새로운 삶의 생성이다. 그런 변신을 꾀하는 지속성 안에서 여행은 모험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부하들을 이끌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그린다. 환각상태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마녀가 돼지로 변신시킨 부하를 구하고, 갖은 고난과 시련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모험인가? 트로이에서 자신의 조국, 아내 페넬로페, 자기 집이 있는 이타카로 귀환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숱한 위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모험처럼 보인다. 많은 낭만주의자들은 오디세우스를 모험가로 치켜세운다. 하지만 철학자 얀켈레비치는 오디세우스가 모험가가 아니라고 폄하한다. 오디세우스가 어쩔 수 없이 모험가가 되었지만 그의 소명은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겪은 여정은 괴물과 싸우고 마녀의 계략을 물리치며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지와 우회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에는 모험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미지의 것을 향한 열려 있음, 미래의 불투명함, 예상할 수 없는 즉흥성이 부족하다. “모험은 고정된 현재나 통제가 가능한 지표화된 시간과 계획, 소망으로 점철된 미래 혹은 종말론의 바깥에 있다. 모험은 유희와 진지함 사이를 왕복한다.”(니콜 라피에르) 모험이 위험을 회피하지 않으며 항상 소망으로 채워진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행의 중요한 성분이다. 여행은 위험의 회피(유희)와 위험과의 대면(진지함)을 동시적으로 포괄하는 활동이다.

여행자는 예속과 형식을 벗어난 열린 시간 속으로 자기를 들이밀고, 선악의 저편으로 날아간다. 여행은 장소와 장소를 잇는 길(경유지) 자체가 목적이고 윤리적 규범이다. 여행자에게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국의 풍광은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이다. 그들은 심미적 이성과 상상 속에서 풍경이나 장소와 하나가 되려고 자기가 경유하는 길(장소)을 자기의 움직임으로 가득 채우며 거기에 자기를 투사한다. 여행자는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는다. 혁명이 그렇듯이 모험의 결말은 미지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그런 맥락에서 여행은 삶으로 도모하는 작은 혁명이고 모험이다. 여행에서 위기의 예측 불가능성과 의외성을 제거한다면 그것은 관광으로 전락한다. 당신이 평탄한 삶과 일신의 안전만을 도모한다면 관광객은 될 수 있을지언정 진정한 여행자가 될 수는 없다. 여행은 항시적으로 여권이나 물건의 분실, 혹은 뜻밖의 노상강도를 만날 위기를 포함하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과 사고도 기꺼이 겪는 모험의 수락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여행은 연속과 단절을 동시에 품는다. 여행은 일상과의 단절이지만 동시에 삶의 연속이다. 여행에서 삶을 전환하는 계기적 기회를 잡으려는 당신은 이렇게 속삭인다. 떠나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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