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WHO 집행이사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억제를 위해 여행과 교역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며, “모든 국가에 증거에 기초한 일관된 결정을 이행할 것을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국 밖에서 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아주 느리다면서 “오히려 이런 전략 때문에 중국 외 (확진 환자) 수가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발언은 지난달 30일 WHO가 신종 코로나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면서도 “교역과 이동의 제한을 권고하지는 않는다”고 못 박은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러한 WHO의 판단과 세계 각국 정부와 국민이 느끼는 신종 코로나에 대한 위협 사이에는 뚜렷한 온도 차가 느껴진다. 국제적 여행과 교역을 방해하는 조처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WHO의 권고와는 달리, 이미 세계 각국은 중국발 여행객들을 향해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미국, 일본 등 다수의 국가들이 근래에 중국이나 신종 코로나 진원지인 후베이성을 다녀온 여행객의 입장을 제한하기로 했다. 중국을 오가는 항공편 역시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이러한 ‘강경책’을 꺼내 든 데에는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결코 느리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는 발병 두 달여 만에 누적 사망자와 확진자가 각각 420명, 2만 명을 넘어서는 등 신종코로나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20명)과 태국(19명), 싱가포르(18명), 미국(16명) 등 해외 누적 확진자도 159명에 달한다.
가뜩이나 국제적 비상사태 선포 때에도 ‘늑장 대응’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재차 중국을 옹호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자 ‘WHO가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WHO는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처음 발병한 바이러스가 태국과 일본, 한국 등 인접국으로 퍼져나가는데도 좀처럼 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았다.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시점은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 사례가 100여 건에 육박하는 등 이미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한 뒤였다.
특히 WHO는 뒤늦게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이번 선언은 중국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아니다”며 중국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중국 정부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영향에도 신종 코로나를 억제하기 위해 취한 이례적인 조처들에 대해 축하를 받을 것”이라며, “WHO는 중국의 전염병 통제 능력에 대해 지속해서 신뢰하겠다”고 치켜세웠다. 중국 내부에서조차 신종 코로나의 발병지인 우한시와 후베이성 당국이 바이러스 발생 초기 무사안일한 대처로 일관하다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긍정적인 평가라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WHO가 분담금 기여도가 큰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별 재정 및 인구에 따른 WHO 분담금 비중에서 중국은 전체 12%로, 미국(22%)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2017년 WHO에 600억 위안(약 10조185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2018~2019년 WHO 예산(44억2200만 달러, 약 5조2520억 원)을 훨씬 웃도는 액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