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기후변화, 기술로 준비해야 할 때

입력 2020-02-0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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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삼한사온’, ‘동장군’이란 말이 무색한 겨울이다. 각 지역에서는 겨울 축제를 치르지 못해 울상이고, 과수 농가는 나무가 평년보다 일찍 겨울잠을 깨어 갑작스러운 한파에 피해를 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기상청이 전망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2081년에서 2100년 사이 지구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1.9~5.2℃ 상승하고 강수량은 5~1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절로 보면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갈수록 짧아지는 모양새다.

온실가스 배출 감소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무기후 정책 시나리오’ 상황으로 보면, 2100년 한반도의 부산과 제주도에서는 아예 겨울이 사라질 것이란 아찔한 분석도 나온다.

잘 알려진 것처럼 농업은 어느 산업보다 기후변화에 민감하다. 농업생산의 주요 요소가 햇빛, 물, 바람 등 모두 자연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과, 배, 복숭아 같은 과일나무는 지역에 맞는 작목을 선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나무가 한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서 소득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과는 대구, 배는 나주, 감귤은 제주 같은 주산지는 이렇게 지역 기후에 맞춰 형성됐다.

그러나 기후가 변하면서 품질 좋은 과실을 생산할 수 있는 재배 적지는 변화할 전망이다. 특히 사과는 기온이 높으면 껍질에 붉은색이 잘 들지 않고 맛이 없어지므로 2050년쯤에는 강원도가 재배 적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과뿐 아니라, 이전에 볼 수 없던 아열대 과일들도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이 같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온에도 착색이 잘되고 맛이 좋은 사과 ‘아리수’를 개발했다. 아열대기후로 변해가는 한반도 환경에 맞춰 망고와 올리브, 커피 같은 새로운 작물 도입과 재배법 연구도 진행 중이다.

아울러, 기후변화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농작물을 연중 생산·공급할 수 있는 미래 농업 생산 시스템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농업인이 현장에서 운영 중인 ‘고온 극복 혁신형 쿨링하우스’를 설치해 실증연구 중이다.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철에도 안정적으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쿨링하우스 실증연구의 핵심이다.

이 시설은 폭 52미터에 길이 86미터, 높이 16미터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운영하는 온실 중 하나이다. 물과 공기를 동시에 공급하는 특수 노즐은 미세한 안개를 발생시켜 기화열을 흡수해 하우스 내 온도를 바깥 기온보다 더 낮게 조절하고 천장의 대형 환기창은 더운 공기를 신속하게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알루미늄 차광커튼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양과 밤·낮의 길이를 조절하며, 작물 뿌리 발육에 적합한 환경조절을 위해 산소공급 장치와 냉·온수 순환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이 시설로부터 온도, 습도, 광, 생장 속도 등의 환경·생육 정보를 수집하고, 여기에서 나온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적용한다면 최적의 생육 환경을 정밀하게 자동으로 제어하는 수준에 이르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후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많은 학자는 쉴 새 없이 진행되는 기후변화가 세계 역사를 바꿨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대기 물리학자 프레드 싱거는 중세 온난기에 농업 생산량 증가와 함께 인구가 증가하고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고 분석했다. ‘기후의 반역’ 저자 유소민은 몽골제국의 몰락과 명·청의 교체를 기후변화와 연관 지어 설명하면서 역사의 흥망성쇠에 기상, 기후가 차지하는 비중을 논증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연 현상에 의해 역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가늠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기후변화, 특히 이상기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은 미래 농업을 결정하는 핵심이기에 관련 기술개발에 더욱 매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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