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중은행, 중국 수출기업 '신용장 네고 거부'…사태 파악 못한 정부

입력 2020-02-10 05:00 수정 2020-02-1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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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여파 수출 차질…배송지 임의변경 땐 계약위반 따른 '미결제 부도' 피해 급증

기업ㆍ하나은행 "항공기 운항 중단 탓 수출매입서류 송부 못해"

무역금융지원 시스템 허점…금융위 "구제 대책 실행시 검토"

정부의 대(對)중국 수출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중국 우한 지역 항공기 운행이 중단되면서, 해당 지역 은행에 무역 관련 서류를 보내야 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의 발이 묶였다. 이 과정에서 국내 시중은행이 수출상의 매입 대금 선지급 요청을 통칭하는 ‘신용장 네고’를 거부하면서, 수출상들은 화물을 보내고도 선박을 항구에 무기한 대기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은행을 총괄하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하는 금융위원회는 사태를 파악조차 하지 못해 수출기업의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7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최근 IBK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은 우한 지역 수입상과 거래하는 수출상의 신용장 네고 요청을 거부했다. 다른 시중은행들 역시 신용장 네고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은행권은 선적 서류 수취 방법을 변경하거나 수입상과 협의하라는 대안 외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은 특사배송업체(DHL, FEDEX 등)를 이용해 중국 우한으로 가는 수출매입 서류를 송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수출상들은 중국 내 제3은행 혹은 얼라이언스를 맺고 있는 타 은행으로 서류 송부를 요청하는 등의 방법이 있지만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런 사태를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은행을 총괄하는 기구인 만큼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을 중심으로 신용장 네고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타 시중은행들이 따라가는 방식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해당 부서에 아직 관련 보고조차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 부분을 인지하지 못해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지만, 이런 애로사항도 피해 구제 대책을 실행할 때 검토하겠다”면서 “우선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시중은행들도 이를 따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수입상은 자국 현지 은행에 담보를 걸고 신용장 개설을 신청한다. 이후 현지 은행이 수입상에게 열어준 신용장을 수출상의 거래 은행에도 보내주면, 수출상은 그 신용장 내용에 따라 화물을 선적해 수입상에게 보낸다.

이때 수출상은 선박회사로부터 선적했다는 증거인 BL(선하증권)을 받게 되는데, 수출상은 BL을 비롯한 선적 관련 서류와 신용장을 가지고 거래 은행에 가서 신용장 네고, 즉 대금 지급을 요청한다. 거래 은행은 심사 후 수출상에게 대금을 지급하고, 해당 서류를 수입상 현지 은행으로 보낸다.

모든 서류를 받은 수입상은 서류와 선박의 화물을 교환하게 되는데, 중국의 경우 서류가 오가는 동안 선박이 먼저 항구에 도착해 대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은행들의 신용장 네고 거부로 수출상들은 신용장 혹은 계약서상의 배송지역이나 수취 방법 등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수출서류 배송지 등 신용장 조건을 임의로 변경할 경우 계약 조건 위반 등으로 미결제 부도 가능성이 생기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수료도 부담해야 한다.

시중은행은 당국에서 아직 가이드라인이 내려오지 않아 수출기업의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입금지연이자 면제, 부도유예기간 연장 등으로 수출기업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신종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이미 선적을 마치고 신용장 네고를 하려는 기업들에는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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