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었나 거품이었나...‘50년 인생계획’ 물거품 위기 맞은 손정의

입력 2020-02-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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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재벌’에서 ‘투자의 대가’로 거듭나려는 손정의(일본명 손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인생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산하 ‘비전펀드’가 미국 유니콘 위워크에 투자했다가 대형 손실을 내면서 모회사까지 타격을 입자 ‘그동안의 업적이 실력이었냐, 아니면 거품이었냐’는 의구심까지 자아내고 있다.

손 회장은 일찍이 “20대에 이름을 알리고 30대에는 사업 자금을 모으고, 40대에 큰 승부를 걸고 50대에 사업 모델을 완성시켜서 60대에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50년 인생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2016년 갑자기 계획을 바꿔 후계자였던 니케시 아로라 부사장을 경영에서 배제하고 5~10년 더 경영 일선에 남기로 했다. 성큼 다가온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그의 승부 근성을 자극한 것으로 보이지만, 순간의 선택이 그의 말년을 좌우하게 생겼다.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무엇일까 짚어봤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EPA연합뉴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EPA연합뉴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99%, 92%라는 처참한 분기 실적(2019년 10~12월)을 발표한 12일.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의 가치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그는 “소프트뱅크그룹의 가치를 투자자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소프트뱅크는 통신회사에서 투자회사로 전환했기 때문에 투자자는 자산이라는 렌즈를 통해 회사를 봐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소프트뱅크의 순자산 가치는 2280억 달러인데 반해 시가총액은 1090억 달러로 절반에 그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영업이익은 투자 가치의 변동에 좌우되고 있다. 2017년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를 출범한 이후 그런 추세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우버테크놀로지와 위워크의 모회사 위컴퍼니 등 투자 기업의 가치가 감소하면서 비전펀드의 영업익이 20억 달러 적자였고, 이는 고스란히 비전펀드의 모회사인 소프트뱅크그룹에 타격을 줬다.

이에 투자자들은 소프트뱅크의 순자산에 주목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최근 1주일 새 26% 상승했다. 미국에서는 11일 소프트뱅크 자회사 스프린트 주가가 78% 폭등했다. 이에 소프트뱅크의 순자산은 128억 달러 늘었다. T모바일과 스프린트의 합병이 완료되면 소프트뱅크는 스프린트의 거액의 채무를 그룹 결산에 포함할 필요가 없어진다.

▲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행동주의 주주인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소프트뱅크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약 400억 달러의 운용 자산을 보유한 엘리엇은 소프트뱅크 지분 3%, 약 25억 달러어치 갖고 있다. 이는 엘리엇이 단일 기업에 투자한 규모로는 최대라고 한다. 업계에선 소프트뱅크가 엘리엇의 자금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엘리엇은 한국에서도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했고, 2018년에는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대주주가 된 후 두 회사에 합병과 고배당을 요구했다.

소프트뱅크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수법을 쓰고 있다. 엘리엇은 소프트뱅크에 주가 부양을 위한 조치를 내놓으라고 압박 중이다. 또 100억~2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비전펀드’에 의한 투자 결정 개선 및 투명성 제고 등을 제안했다. 이 가운데 비전펀드의 일관성 없는 투자 스타일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투자자들은 공감한다. 12일 발표한 ‘어닝 쇼크’도 여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적대적 자세로 먹잇감을 공격하기로 유명하지만, 손 회장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 주식의 약 20%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소프트뱅크가 중대 결정을 내리려면 주주 투표에서 3분의 2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엘리엇은 우호적인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손 회장을 포함해 소프트뱅크 경영진을 직접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3, 4위 이동통신사 스프린트의 마르셀로 클라우레 회장과 T모바일의 존 레저 CEO. AP연합뉴스
▲미국 3, 4위 이동통신사 스프린트의 마르셀로 클라우레 회장과 T모바일의 존 레저 CEO. AP연합뉴스
◇오랜 숙원이었던 소프트뱅크 산하 미국 4위 이동통신사 스프린트와 3위 T모바일US의 합병 승인이 지난 11일 드디어 미국 뉴욕연방지법에서 내려졌다. 하지만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합병 승인에만 2년 가까이 걸리면서 차세대 이동통신규격인 ‘5G’ 투자 전략이 지연된 데다 규제 당국이 승인 조건으로 요금 플랜 등에 제한을 뒀기 때문이다. 미국 1, 2위인 버라이존과 AT&T는 이미 5G 서비스가 상용화 단계에 돌입, 선수를 놓치면서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치명적인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미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신규 업체의 이동통신시장 참가를 위해 프리페이드이동통신사업을 위성TV 사업자 디시네트워크에 매각해 통신망을 개방했다. 미 농림부에서는 투자 효율이 낮은 농촌 지역의 인터넷망의 조기 정비와 3년 간 요금 인상을 동결시켰다.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합병회사는 휴대전화 계약 건수에서 버라이존, AT&T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지만, 투자 전략 및 가격에 제한이 있는 만큼 경쟁력 유지를 위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가장 중요한 건 손 회장이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투자자들도 안심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실적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소프트뱅크를 언제까지 믿어야 하느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2017년 비전펀드 출범 이후 투자 기업 수는 계속 늘었는데, 작년 9월 이후 줄곧 88개사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심지어 작년 여름 소프트뱅크는 일본 3대 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이 비전펀드에 출자 참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지금까지 출자를 결정한 곳은 제로(0)다. 비전펀드 2호 출범을 계획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제2의 위워크 같은 투자 실패는 없는지 두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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