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불꽃 수주전'은 옛말... 최근 '무혈입성' 줄잇는 이유는

입력 2020-02-17 15:30 수정 2020-02-1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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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13구역·방배삼익 수의계약... 갈현1구역도 가능성 커

서울 재건축ㆍ재개발 정비사업장들의 시공사 ‘무혈 입성’이 늘고 있다. 정부의 계속된 압박 카드로 건설사들이 수주 경쟁을 위해 다양한 제안을 내놓기가 어려워지면서 상징성이 큰 주요 사업장조차 오랜 시간 눈도장을 찍은 건설사가 경쟁 없이 시공권을 손에 넣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13구역 재개발 조합은 15일 열린 시공사 선정 총회 찬반 투표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지난해 기존 시공사인 라인건설과 결별한 후 시공사 재선정에 돌입했지만 HDC현대산업개발만 잇따라 참여하면서 유찰이 계속되자 결국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별다른 경쟁없이 시공권을 따내면서 올해 들어 벌써 서울에서만 2곳의 정비사업 시공권을 거머쥐게 됐다. 공사비 1894억 원으로 827가구의 새 아파트를 짓는 홍은13구역 재개발 공사는 올해 6월 시작된다.

두 차례의 유찰로 수의계약으로 전환한 서울 성북구 장위15-1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장 역시 같은날 호반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했다. 호반건설은 이곳에 206가구 규모의 새 아파트를 짓는 사업에 돌입한다.

일반경쟁입찰은 2개 이상의 건설사가 참여해야 입찰이 성립된다. 한 사업장의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2회 연속 1개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할 경우 조합은 수의계약으로 이를 전환할 수 있다.

통상 정비사업 수주전에선 건설사들이 자존심을 건 승부를 벌인다. 상징성을 가진 단지가 될 만한 사업장엔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면서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출혈 경쟁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2017년 정부가 주요 정비사업장의 수주전을 감시하고 나서면서 수주전은 과거보다 조용히 치러지는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수의계약 기준이 2018년 2월 이후 종전 ‘3회 유찰’에서 ‘2회 유찰’로 바뀐 것 역시 경쟁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무엇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안전진단 기준 강화, 인허가 심의 강화 등의 압박 카드가 줄줄이 쏟아지면서 정비사업 수주시장은 빠른 속도로 썰렁해졌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대형건설사 한 임원은 “과거엔 한 건설사가 선점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사업장이라고 해도 경쟁사가 특화설계나 금융 지원 등 다양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수주전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정부가 이를 강도 높게 제한하고 있지 않냐”며 “수주 환경 악화로 먹거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눈도장을 찍은 건설사가 있다면 굳이 들어가 무의미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삼익아파트 재건축 조감도.
 (자료 제공=방배삼익재건축조합·클린업시스템)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삼익아파트 재건축 조감도. (자료 제공=방배삼익재건축조합·클린업시스템)

서울 서초구 방배삼익아파트(재건축 예정 단지)와 은평구 갈현1구역(재개발 예정 단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방배삼익의 경우 대림산업의 단독 참여로 2차례의 입찰이 모두 유찰되면서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

조합은 14일 시공사 수의계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 선정공고를 내걸었다. 수의계약 대상은 대림산업이 유력하다. 이 단지는 준공 40년을 코앞에 둔 아파트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이름을 알렸다. 방배동 알짜 입지로 꼽히지만 대림산업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까닭에 타 건설사들의 중도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공사비만 1조 원에 육박하는 갈현1구역은 상황이 다소 복잡하다. 시공사 선정 첫 입찰에 현대건설과 롯데건설이 참여했지만 조합과 현대건설 간 갈등으로 법적 다툼이 벌어지면서 두 번째 입찰이 재개됐다. 그러나 입찰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됐던 GS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발을 빼면서 결국 롯데건설만 참여해 입찰 조건이 성립되지 못했다.

조합은 19일 대의원회를 열어 시공사 선정 방법을 의결할 예정이다. 업계는 이곳 역시 첫 입찰부터 지속적으로 문을 두드려온 롯데건설이 시공권을 가져갈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사들이 이처럼 입찰 경쟁을 포기하고 수주에 선별적으로 나서면서 ‘확실한 한 곳’을 따내기 위한 전략이 확대되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지난해부터 너도나도 프리미엄 아파트 브랜드를 내놓거나 기존 브랜드 재정립에 열을 올리는 건 악화된 수주 환경을 타개하려는 생존 전략이라는 시각이 많다.

대형 건설사들이 그간 외면해온 가로주택정비사업에 진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탄탄한 재무구조에 브랜드 파워를 가진 대형사의 소규모 사업 진출은 다시 중견건설사들의 생존 불안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 규제 심화로 수주전에서 홍보 전략을 세우기가 어려워지면서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거나 소규모 정비사업 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분양가 상한제와 같은 가격 통제와 출혈 수주 경쟁 방지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생존이나 주택공급 확대 방안 차원에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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