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주요 저지선으로 인식됐던 1200원을 돌파했다. 상승속도도 가파르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 강세가 벌어지는 와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진자 급증까지 겹치면서 위험자산 회피 현상이 확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상승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외환당국의 환시개입도 중요하겠지만, 근본 원인인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반면, 이미 크게 오른 상황이라는 점에서 기술적으로도 조정국면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대내외 여건에 변화가 있더라도 수급 여건상 급락하기도 어렵다고 전망했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10.5원(0.88%) 상승한 1209.2원에 거래를 마쳤다. 마감가가 장중 최고가로 이는 지난해 9월4일(종가기준 1208.2원, 장중기준 1212.3원) 이후 최고치다. 하루 상승폭도 작년 8월5일(17.3원·1.44%) 이후 가장 컸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달 23일 종가(1168.7원)와 비교하면 40.5원(3.47%) 급등한 셈이다.
이같은 상승세는 원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같은날 역외 달러·위안(CNH)도 7.0426위안을 기록해 작년 12월5일 7.0455위안 이후 2개월보름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같은 상승세는 우선 달러화 강세 때문이란 분석이다. 실제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화의 평균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인덱스는 같은날 99.2811을 나타냈다. 20일에는 99.6914을 기록해 2017년 4월21일(99.9702) 이후 2년10개월만에 최고치를 보였었다.
미국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반면,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경제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발표된 미 연준(Fed)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미국경제가 완만한 성장을 지속한다’며 ‘향후 통화정책은 현재 기조가 당분간 적절하다’고 언급했다. 반면, 독일은 지난해 성장률이 0.6%를 기록해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는 등 유로존 경제부진을 주도하고 있다.
그나마 21일(현지시각 기준) 유로지역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개선되는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부진하다는게 대체적 시각이다. 유로존은 49.1, 독일은 47.8, 영국은 51.9를 기록해 각각 예상치(47.5, 44.8, 49.7)을 웃돌았다.
안영진 S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가 강하게 오르는 바람에 원화를 비롯한 다른 통화들이 모두 약했다. 이같은 이유의 거의 대부분은 유럽 경제가 생각보다 개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최근 며칠간 원·달러 환율 급등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때문이란 분석이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장은 “특이했던 동향은 지난주 목요일부터 확진자수가 100여명씩 늘면서부터 나타났다. 확진자수 증가가 발표될 때마다 원화와 함께 위안화 등 위험자산 환율이 같이 반응했다. 코로나19 사태 진정여부를 한국과 연계해 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한국 상황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전했다.
◇ 얼마 오를까? 대응 방안은? =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오를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원·달러가 1200원을 넘어서면서 코로나19 사태를 상당부문 반영했다고 보는데다, 달러화 강세가 숨고르기 국면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도 가파른 위안화 상승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지난해 고점인 1223원 정도가 고점일 것으로 예상했다.
정 센터장은 “코로나19에 대한 부정적 상황은 원·달러가 1200원을 넘어가면서 웬만큼 반영했다. 위안화도 7위안을 돌파한 상황이라 중국 당국도 위안화의 가파른 상승을 용인하기엔 자본이탈과 미국의 시선이 걸린다”며 “국내 외환당국도 예전처럼 특정 레벨에서 대응하기 보다는 오를수 있는 변수가 있을땐 길을 터줬다가 다시 민감한 레벨에 오면 움직이는 모습이다. 사태 추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작년 고점인 1223원 정도까지는 열어둬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 위안화도 7.2위안으로 고점이었다”고 전망했다.
안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여파는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라 달러화 움직임이 중요하다. 그런 달러화가 주말사이 반락하면서 숨고르기를 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며 “코로나19 위험에 대해서는 누구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심을 갖고 있어야 하나 환율시장의 메인 통화인 달러화가 기술적 저항선에 부딪쳤다. 원·달러도 1200원이면 충분히 위험을 반영한 수준이다. 현 수준에서 머무르는 것만해도 코로나19에 따른 위험회피 안전선호 현상을 드러내 주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황이 반전되더라도 원·달러가 급격히 하락하긴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정 센터장은 “외환 수급적으로도 1~2월은 달러 공급 비수기다. 통상 1~2월 부진하다 3~4월부터 늘어나는 수출이 중국 영향으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4월엔 배당 시즌이다. 최근 외화예금도 줄고 있다”며 “사태가 수습되더라도 원·달러가 빠르게 하락압력을 받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전했다.
한편, 지금 상황을 환율시장에 국한해 접근하긴 어렵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상황이 장기화하면 생산과 수출 등 여러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대외신인도와 경상수지 문제 등 여러 가지로 연결되며 큰 영향을 미친다. 환율도 당분간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외환시장 안정대책이나 시장 개입을 통해 과도한 변동을 막을수 있겠지만 일시적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해 직장 감염 등으로 번지면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환율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보다도 코로나19 사태를 안정시키는 대책이 필요하다. (당국이) 강력한 안정대책 필요성에 대한 심각성을 간과하지 않나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