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정책 설계자로 꼽히는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비대위원장에게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정책 조언을 들어봤다.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최근 19번째 대책까지 내놓으며 집값 잡기에 골몰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지적한 뒤, 이 같은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 방안으로 갈 곳 잃은 부동자금의 물꼬를 다른 산업 정책으로 뚫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인 진단과 해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부동산 정책의 핵심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하냐면 ‘분양가 상한제’라고 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는 이 같은 인식에서 전환해 부동자금을 다른 산업에 이동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의 부동자금이 얼마냐 하면 공식적으로 1100조 원이다. 집 안에 숨은 달러까지 1300조 원이 떠돈다. 이 돈이 불패신화라는 서울 강남으로 모이는 것”이라며 “바로 여기서 실패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부동자금이 계속 늘어나고, 더는 사람들이 사업을 안 하려고 한다. 투자 마인드가 없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부동자금이 산업쪽으로 흐를 수 있게 산업정책을 빠르게 시행해야 한다”며 “현 정부의 착각과 무지”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참여정부 때 정책실장 등을 지낸 그는 한·미 FTA 체결로 인한 경기 부흥 효과를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은 참여정부가 부동산 규제만 한 줄 아는데, 한·미 FTA를 거치며 당시 주식시장 규모가 몇 배나 커졌다. 부동자금이 금융시장, 산업으로 옮겨준 게 큰 원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 때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해외와 비교하면 크지 않다”며 “당시 OECD 중 독일 등을 제외하곤, 미국 맨해튼 역시 3~4배, 인도 뭄바이는 16배나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정도 컨트롤할 수 있었던 건 돈을 산업으로 이동시켜줬기 때문”이라면서 “현재 세계 부동산 정책의 낙폭이 적은 데 반해, 대한민국은 엄청 올랐다. 현 정부가 부동자금 관리를 안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우파’를 자임해온 김 전 위원장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세 축을 기본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완전히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정책이 아닌 사회정책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분배를 위한 사회정책이지, 성장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우리 실정에 맞지 않을뿐더러, 시대착오적 정책”이라고 평했다. 김 전 위원장은 “ILO(국제노동기구)가 내놓은 정책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자기 것이 없다는 의미”라며 “1920년대 케인스 모델을 기본으로 한 구태 이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는 내수 아닌 수출 중심이란 점을 들어 노동 임금을 올리면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 경제구조는 미국처럼 대기업 중심이 아니다. 자영업자가 고용인구의 26~30%다. 사실상 자영업자 분류에 실업이나 반실업 상태인 사람도 속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에게 ‘네가 고용주니까 피고용자에게 돈을 더 줘라’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OECD 국가 평균 자영업자 비율은 15% 안팎인데, 국내의 경우는 이의 2배 가까이 된다. 우리 경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데, 소득주도성장을 말한다”면서 “분배정책인 사회정책을 성장정책이라고 국민을 속일 줄 알았다. 이 정책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생존권 해결책에 대해서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면서 신산업 고용률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전 위원장은 “산업 구조조정을 이뤄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다 막아버렸다. 예를 들어 배달의민족과 같은 서비스 산업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다. 그런데 현 정부는 혁신 실험을 규제한다. 줄기세포, 드론 등 온갖 규제로 창의적 비즈니스를 막고 있다. 금융개혁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금융기관은 아직도 ‘전당포식’ 영업을 하고 있다. 이래서 고용발전은 없고, 엉터리 고용만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먹방(먹는 방송)’ 규제, 술병에 연예인 사진 부착 금지 등을 언급하며 “국민이 자유 능력이 없다고 감시하는 까닭”이라며 “가격 경쟁이 자리 잡기까지 국가가 인내할 줄 모르고 바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무너지는 경제 허리, 40대 고용절벽에 대해서도 그는 서비스 산업 고용률을 확대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기존의 서비스 산업이 여관, 식당 등이었다면, 앞으로는 법률, 외교 등에서도 서비스를 선진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타다’ 이슈 등 공유 산업을 언급하며 “첨단 서비스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자꾸 제동을 건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 분권 분야를 개척하고 구체화한 인물로 평가받는 김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 정책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그는 “말로만 연방제에 가깝다고 하지, 실제로 역행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혁신도시 등을 만들며 지역 균형에 힘쓴 노무현 정부와는 180도 다르다”고 평했다. 또, 그는 최저생계비나 노동 시간 등을 예로 들며 “지역마다 생계비가 다른 실정을 반영해 미국, 독일과 같이 지역 단위에서 조정이 가능토록 해야 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일률적으로 덮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역 단위에서 경제적 자치 결정을 금지하는 실정”이라며 “이처럼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전체주의라고 본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의 점수를 매겨 달라는 요청에 김 전 위원장은 ‘F’라고 답했다. 낙제점을 매긴 이유에 대해선 “이전에는 ‘D’라고 말했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며 검찰에 관해 접근하는 방법 등을 봤을 때 이기려고만 하지 현명하게 지는 법을 모른다고 판단했다. 지는 것 또한 국민을 위한 양보로 다음을 위한 초석이라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확산 중인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대해서도 “비전문가인 총리가 컨트롤 타워가 되면 정무적 판단이 들어가는 등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질병관리본부장이 컨트롤 타워가 돼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모두 지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에 대해서도 그는 ‘담론이 없는 정치’라고 꼬집었다. “국정 운영에 대한 얘기가 없고, 패를 나눠 싸우기만 한다”며 “담론이 없다는 건 미래가 실종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고질병은 잘못된 공천 제도에서 기인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김 전 위원장은 “그간의 정치는 정변을 통해 나타난 지도자가 중심이 돼 시혜 주듯 나름의 역사관도 없는 인물들에 정치를 맡겼다”며 “이렇다 보니 담론 없는 줄서기식 패거리 정치가 형성됐다”고 비난했다.
행정수도 설계자로서 평가받는 김 전 위원장은 “세종시는 현재 중앙정부가 권한을 다 쥔 탓에 창의 혁신 실험이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세종시는 설계 당시 생각했던 ‘오리지널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 변화를 다 반영하는 기술 수준을 담은 미래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그렇게 안 된 것 같다. 통합된 모습이 아니라, 지역 간 격차도 크다”고 진단했다. 김 전 위원장은 “분권도 되어 있지 않고, 서울 주변 신도시 개념으로 물리적 구조만 들어간 모양새”라고 아쉬워했다. 이번 총선에서 세종시 출마로 가닥을 잡고 있는 그는 “세종시는 새로운 문화, 교육의 도시로,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도시가 돼야 한다. 당락을 떠나서 이 같은 방향성을 얘기하는 데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김병준 약력△1954 경북 고령 출생 △대구상고·영남대 졸 △미국 델라웨어대학 정치학 박사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 박근혜 정부 당시 국무총리 지명자 △ 국민대 명예교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