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금융권에 따르면 키코 분쟁조정안을 수용한 은행은 6개 은행 중 우리은행 단 한 곳뿐이다. 나머지 5개 은행 중 3곳은 답변 기한을 3차례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고, 나머지 2곳은 금감원 배상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한은행은 6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키코 관련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이사 전원 동의를 얻지 못해 이사회 개최가 불발됐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은 금감원에 키코 배상 분쟁조정안의 수락 기한 재연장을 요청했다.
전날 하나은행과 대구은행도 재연장을 요청했다. 하나은행은 키코 배상 관련 추가 사실 확인 및 법률 검토를 통한 신중한 판단과 차기 이사회 일정을 감안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구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사회 개최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달라면서 재연장을 요청했다.
금감원은 이들 은행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새로운 수락 시한은 1개월 후인 내달 6일까지다. 수락 시한 연장은 이번이 세 번째다.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해 말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 등 6개 은행에 키코 피해 기업 4곳에 피해금액의 15~41%를 배상할 것을 권고했다.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 원 △우리은행 42억 원 △산업은행 28억 원 △하나은행 18억 원 △대구은행 11억 원 △씨티은행 6억 원 순이었다. 또 나머지 145개 피해 기업에 대해선 분쟁조정 결과를 바탕으로 은행의 자율조정(합의 권고)을 의뢰했다.
이 중 우리은행이 유일하게 금감원의 요구를 수락해 배상을 마쳤다. 반면 산업은행과 씨티은행은 배상 권고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소멸시효가 지나 법적 책임이 없는 사건을 배상할 경우 경영진이 배임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은행들이 키코 배상안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윤석헌 금감원장이 난처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분조위는 ‘권고기구’일 뿐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 양측이 모두 받아들여야만 효력을 갖는다. 키코 피해 복구는 윤 원장이 취임 전부터 내세웠던 대표적인 정책이다.
분쟁 조정안 수락 기간 재연장을 요청한 신한·하나·DGB대구은행이 한 달 후에 수용 거부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민법상 소멸시효가 지나서 배상을 하게 되면 주주의 이익을 해하는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는데도 금감원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며 “4개 피해 기업에 대해 분조위 권고를 수용할 경우 추가로 145개 기업에 약 2000억 원을 더 배상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