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기업 캘리스코가 ‘적과의 동침’을 택했다. 아워홈의 관계사인 캘리스코가 새 식자재 공급파트너로 경쟁사인 신세계푸드를 선택하자 업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불거진 남매간 경영권 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고 분석한다.
구본성 대표가 이끄는 아워홈은 지난해 8월 구지은 대표가 이끄는 캘리스코에 대한 식자재 공급 중단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캘리스코는 법원에 ‘공급 중단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일부 인용해 아워홈은 올해 4월까지 캘리스코에 식자재를 공급하기로 돼 있었다.
캘리스코는 아워홈의 외식사업부가 분사한 기업으로 현재 아워홈의 관계사다. 아워홈 부사장을 지낸 구지은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구 대표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이자 아워홈 창업주인 구자학 회장의 셋째 딸이다. 아워홈 구본성 부회장과는 남매 사이다.
캘리스코는 5일 서울시 성동구 신세계푸드 본사 대회의실에서 신세계푸드와 식자재 공급 및 제품 개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9일 밝혔다.
신세계푸드와 캘리스코는 이번 협약을 통해 양측 간 시너지를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카레, 미소, 소불고기, 드레싱, 전처리 채소 등 전용 식재료의 공동개발을 통해 신세계푸드는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캘리스코는 해외진출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업계에서는 양 사의 협약이 단순한 시너지 효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구본성 부회장이 아워홈 경영에 참여한 이래 구지은 대표와의 경영권 분쟁이 끊이기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앞서 아워홈의 공급 중단 통보에 캘리스코가 신세계푸드와의 협력으로 맞불을 놓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구지은 대표가 식자재 공급 기업 가운데 신세계푸드를 선택한 것에도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신세계푸드는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기업 중 하나다. 정 부회장과 구 대표는 이종사촌 지간으로 구 대표의 어머니인 이숙희 여사는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언니다.
아워홈과 신세계푸드는 급식과 식자재 부분의 라이벌 기업이기도 하다. 구본성 부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사촌 간 대결구도에 구 대표가 정 부회장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 대표가 ‘남매 경영’을 포기한 대신 ‘사촌 경영’을 택했다는 것.
다만 캘리스코 측의 공급사 교체는 ‘경영을 위한 불가피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구 대표는 2009년 아워홈 외식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캘리스코를 설립한 뒤 줄곧 아워홈에서 식자재를 공급받아 왔다. 이후 구 대표가 아워홈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회사인 캘리스코로 자리를 옮기며 남매간 경영권 분쟁이 발발했고, 결국 아워홈이 지난해 캘리스코에 대한 식자재 공급 중단 의사를 밝힌 것이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캘리스코를 이끄는 구 대표의 입장에서는 먼저 손을 놓은 아워홈을 대체할 기업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아워홈이 가장 껄끄러워하면서도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협력사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캘리스코는 신세계푸드와의 계약은 아워홈과의 분쟁과 상관없는 해외 진출을 위한 전략적 협업이라는 입장이다. 우선 국내 위주의 사업을 해외로 확대하며 첫 해외 진출 브랜드로 카츠 카페 ‘히바린’의 뉴욕 매장을 연내 오픈한다는 계획이다.
캘리스코 관계자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간편식 수출도 준비 중”이라며 “국내 대표 식자재 유통기업인 신세계푸드와의 업무 체결은 안정적인 식자재 공급처 확보뿐만 아니라 연구 개발 및 신사업 확장 등 여러 활동에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캘리스코는 돈카츠 브랜드 ‘사보텐’, 순수 국내 카츠 카페 ‘히바린’, 캐주얼 멕시칸 푸드 ‘타코벨’, 모던 한식 브랜드 ‘반주’ 등 4개의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며 2019년 기준 연간 880억 원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외에 사보텐 돈카츠 제품과 소스류 등을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하며 가정 간편식 시장에도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 간편식 매출은 이 회사 전체 매출액의 8분의 1 수준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