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의 세계는 왜?] ‘좀비’도 잡겠다던 미국, 코로나19에 무기력한 이유는

입력 2020-03-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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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부 차장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가상의 존재인 좀비가 폭주하는 사태도 해결하겠다고 기세등등했던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실제 전염병에는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미 발원지인 중국을 넘어 6대 주로 퍼져나갔다. ‘돈줄’인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한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선언을 꺼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팬데믹 상황에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절대로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좀비 아포칼립스(Zombie Apocalypse)’도 준비했던 미국이 실제 팬데믹에는 우왕좌왕하니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미국이 좀비 사태에 대비하는 ‘좀비 플랜’이 있었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2014년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이 2011년 4월 30일(현지시간) 자로 좀비의 공격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 전략 계획 문서인 코드명 ‘콘업8888’을 작성했다고 폭로했다. 이 문건에서 규정한 좀비 발생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병원균의 공격이다. 또 문건은 인명 보호를 위한 방어선 유지, 좀비 위협을 퇴치하기 위한 작전, 정부가 법적 질서를 회복하도록 돕는 방안 등 3단계로 전략을 구성하는 등 단지 재미 삼아 만들었다기에는 매우 구체적이다.

펜타곤은 계획만 짜놓은 것이 아니라 훈련도 하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2016년 미 국방부 산하 국립군의관의과대학이 좀비가 전국적으로 퍼지는 상황을 가정해 간호사관 후보생들에게 검역과 대규모 백신 관리 등을 어떻게 할 것이지 교육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실제 일어나지 않을 일에도 예산과 시간을 투입해 대응 방안을 짜고 훈련까지 했던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는 왜 이렇게 무능력한 것인가.

주요 외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대응 능력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미국은 분명 한국과 일본 등 중국 주변국보다 시간적 여유를 많이 확보했다. 또 이번 전염병 사태가 심각하다는 점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막상 문제가 터지니 곳곳에서 구멍이 보이고 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자국민을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HHS) 요원들이 보호 장비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고, 적절한 대응 훈련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난달 말 한 미국 정부 내부고발자의 폭로다. 공교롭게도 우한에서 탈출한 미국인이 격리됐던 캘리포니아주 트래비스 공군 기지 인근에서 2월 말 해외를 방문하지도, 다른 확진자와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코로나19에 전염된 미국 첫 지역사회 감염 사례가 나왔다. 그리고 불과 한 달도 안 돼 미국 내 확진자는 500명을 넘었다.

하루 약 1만 건에 달하는 코로나19 검사가 이뤄지는 한국에 비해 너무나도 부족한 미국의 검사 수도 질타를 받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6일 자 기사에서 수십 명의 공중보건 관계자와 인터뷰하고, 전국의 데이터도 집계한 결과 겨우 1895명이 검사를 받고 그중 약 10%가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는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더라도 리더가 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번 사태로 다시 확인한 셈이다. 트럼프가 미리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경계하고 적절한 대응을 지시했더라면 좀비라도 잡을 수 있다는 미국이 코로나19를 제어하지 못했을까. baejh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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