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미국 입국 금지’ 유럽, 열린 국경 시험대

입력 2020-03-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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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비아 국경폐쇄·이탈리아 통제 강화 등…코로나19에 흔들리는 ‘하나의 유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전 세계에서 고립주의가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의 ‘열린 국경’ 원칙이 시험대에 올랐다.

11일(현지시간)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유럽에 대해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글로벌 고립주의 확산에 불을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13일부터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여행을 중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사실상 입국 금지에 해당하는 조치로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유럽 26개국에 적용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경이 없는 유럽 내에서도 입국 금지 움직임이 확산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과 소수 비회원국 등 26개국은 솅겐 조약에 따라 여행객이 비자나 여권 검사 없이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국경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유럽의 열린 국경 원칙은 흔들리고 있다. 일부 회원국들이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이탈리아에 대해 국경 통제 강화에 나선 것이다.

슬로베니아는 전날 이탈리아와 접한 국경 232㎞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마르얀 세렉 슬로베니아 총리는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봉쇄령으로 인해 누구도 여행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조처에 나서게 됐다”며 관계부처에 이같이 지시했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오스트리아도 같은 날 이탈리아에서 들어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건강 확인서를 지참한 경우에만 입국을 허용하는 쪽으로 국경 통제 수위를 높였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이탈리아에서 오는 여행객들은 건강 증명서가 없거나 입국한 뒤 14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하지 않으면 입국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유럽에서는 당초 현안이었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미래관계 협상은 뒤로 밀리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까지 간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 됐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하나의 유럽’이라는 통합정신뿐만 아니라, 경제까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루크체이나 라이힐린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는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roject syndicate)’에 기고한 글을 통해 “코로나19는 세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반 성장 둔화 혹은 경기 침체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경기 침체는 개별국가에서 일어난 경기 침체보다 더 깊고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특히 EU와 같이 개방된 경제는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며 “더군다나 지금은 모든 EU 회원국들이 심한 충격을 받고 있어서 지난 2010년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보다 서로를 도울 능력이 훨씬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미 유럽 국가 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에서는 경제적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전례 없는 전국 이동제한령을 내린 데 이어, 이날 약국 등 생필품 판매 업소를 제외한 모든 상점에 휴업령을 내렸다.

앞서 2009년 신종플루 당시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 선언을 철회하기까지 1년 2개월이 걸렸다. 만일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그때처럼 장기화한다면 역내 왕래 중단과 소비 침체 등으로 인한 경기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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