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유행) 선언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새로운 패닉에 빠졌다.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주목을 받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로나19 관련 연설에선 정작 시장이 기대했던 대규모 재정 투입이 없었다. 대신 경제에 극약이나 다름없는 ‘이동제한’ 카드를 내놓으면서 시장은 되레 ‘트럼프 쇼크’에 더 요동쳤다.
WHO는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pandemic)을 공식 선언했다. WHO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팬데믹 판단을 내린 것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대유행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 WHO는 팬데믹을 선언한 지 1년 2개월 만에 해제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 이외에서 감염 속도가 가속화하는 데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각국에 대책 강화를 촉구했다. 아울러 “현재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최전선에는 이란과 이탈리아만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곧 유사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각국은 치료와 확산 억제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 세계 114개국에서 12만 명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이제서야 팬데믹을 선언한 WHO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WHO는 작년 말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지 거의 3개월여 만에 팬데믹을 선언, 초동 대처가 늦어 코로나19 사태가 더 장기화될 것이라는 공포를 키웠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뉴욕증시의 강세장 종말을 선언하면서 올해 중반까지 S&P500지수가 2450선까지 15%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내놓은 코로나19 처방전은 투자자들을 다시 한번 실망시켰다. 그는 △코로나로 타격을 입은 기업에 대한 자금 조달 지원, △수입원이 끊긴 근로자에 대한 금융 지원, △유럽에서의 미국 입국 30일간 금지 등의 대책을 내놨는데, 음식점이나 기타 서비스업 등 소비자들과 직결되는 분야에 대한 지원이 빠진 게 문제였다. 특히 ‘이동제한’이란 초강수는 장기화할 경우 경제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트럼프의 연설 후 12일 아시아증시는 쑥대밭이 됐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주식과 채권, 원화 가치가 일제히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일어났다. 또 코스피지수 1800선 사수가 위태로운 가운데 선물 가격이 5% 이상 빠지면서 한국거래소가 약 8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결국 코스피지수는 전일보다 3.87% 급락한 1834.33으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13.5원 오른(원화 가치 하락) 1206.5원으로 장을 마쳤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8bp(bp=0.01%포인트) 오른 연 1.387%를 나타냈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다만 단기 국고채 금리는 내려갔다.
일본증시 닛케이225지수는 4.41% 급락한 1만8559.63으로 2년 11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낙폭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컸다. 중국증시 상하이종합지수는 1.52% 하락한 2923.49로, 홍콩증시 항셍지수는 3.66% 급락한 2만4309.07포인트로 각각 장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