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전례 없는 세계 대공황 불안에 투자자들이 일제히 달러 자산에 몰리면서 글로벌 달러 대란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 신흥국들은 수년간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왔지만 이례적인 달러 부족 위기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일 위기에 몰렸다고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진단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주요 6개국은 지난해 부채 감축에 힘써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달러 부채를 251억 달러로 줄였다. 그러나 상환해야 할 달러 부채는 오는 2022년에 419억 달러로, 올해보다 67% 급증하고 나서 2024년에는 444억 달러로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코로나19에 따른 세계적인 불황에 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볼 수 없었던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또 1998년 외환위기의 쓰라린 기억이 있는 동남아 국가들은 다른 지역 신흥국보다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완충망을 촘촘히 구축했다는 평가다. 경상수지 흑자와 비교적 풍족한 외환보유고, 통화 스와프 계약 등이 그 증거다.
그럼에도 애널리스트들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코로나19 전염 억제를 위해 경제 활동의 많은 부문을 폐쇄하면서 달러 부채가 급증할 위험이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무디스인베스터스서비스의 크리스티앙 드 구즈만 선임 부사장은 “그 어떤 동남아 국가도 현재 즉각적인 부채 상환 압박을 받지는 않고 있다”며 “그러나 현지 통화는 이미 평가절하 압력을 받고 있고 실제로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했을 수 있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다른 국가보다 해외 자본 유입에 더 의존하고, 재정수지와 경상수지가 동시에 적자인 ‘쌍둥이 적자’를 안고 있는 인도네시아와 인도가 특히 위험하다고 블룸버그는 경고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재정적자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3%에서 5%로 올리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는 올해 2.5~3.0%에 이를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는 올해 미국 달러에 대해 약 16% 하락해 아시아에서 가장 성적이 좋지 못한 통화가 됐다.
인도도 비슷한 압력에 놓였다. 이달 들어 인도 루피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정부가 3주간의 전국봉쇄령을 선언하고 나서 인도증시 센섹스지수는 지난 23일 13% 폭락해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말레이시아도 코로나19에 취약한 아시아 신흥국으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은 지난 18일 보고서에서 “말레이시아는 상품 수출이 GDP의 15%를 차지하는 등 해외 의존도가 커서 취약하다”며 “달러 부족에 따른 글로벌 신용위기에서 비롯된 즉각적인 유동성 압박 이외에도 상품 가격 하락이 또 다른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