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한진칼 주주총회에 대한 단상

입력 2020-04-01 17:23 수정 2020-04-0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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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올해 관심 있게 봐야 할 주총은 어느 회사인가요?” 의결권자문사에서 일하면 매년 주총 시즌 때마다 듣게 되는 질문이다. 올해는 달랐다. 가장 많았던 질문은 단연 한진칼 이슈였다. 땅콩 회항, 물컵 사건 등에 이어 최근 형제간 경영권 분쟁 이슈로 뜨거웠기 때문이다. 대부분 질문은 곧장 본론으로 직행한다. “회사측과 3자 연합 중 어디를 지지하세요?”

2019년 주총에서의 의결권 행사 자격을 마감하는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으로 현 경영진 지분 37.1%와 반경영진인 이른바 ‘3자 연합’(31.98%)은 지분 규모가 비슷했다. 2월 20일 추가 공시에서는 38.10%대 37.08%를 기록해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경영권 분쟁이 늘 그렇듯 주가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2019년 말 3만~4만 원대였던 주가가 3월 4일 기준 불과 3개월 만에 9만6000원을 찍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기 회사의 경영권 승계 문제에 펀드와의 분쟁까지 겹쳤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장세에서도 이렇게 주가가 널을 뛰니 당연히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주총 전에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용 면에서는 아직 안건이 공고되기 전이었고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누구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고 싶지 않아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다만, 안건 발표 전이라도 절차상 관전 포인트는 분명했다. 회사가 발표하는 주총 운영 절차만 봐도 회사의 혁신 의지를 확인하기엔 충분하기 때문이다.

먼저 주주제안 무력화 방안 활용 여부다. 하지만 이번 건은 3자 연합의 주주제안 순서를 뒤로 배치해 부결시키는 일반적인 방법은 원천적으로 쓰기 어려웠다. 정관상 이사 수가 ‘3명 이상~X명 이하’와 같이 특정된 경우에는, 회사 안건을 앞으로 배치해 X명까지 선임한 후 정원을 채우면 그 뒤의 안건은 자동 폐기된다. 그러나 한진칼의 정관은 ‘회사의 이사는 3인 이상으로 한다’로 규정해 이사 수에 상한이 없어 그 뒤 안건도 계속 유효했다. 단, 다른 무력화 방법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주주제안으로 올라온 이사 선임안을 개별 안건들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안건으로 합쳐서 상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 명만 부결돼도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부결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방법은 쓰지 않았다. 한진칼은 회사측 이사 안건들은 2-1~2-5호 안건으로, 주주제안으로 올라온 이사 안건들은 2-6~2-9호 안건까지 개별로 상정했다.

다음으로 슈퍼주총데이 활용 여부다. 주총 의결은 ‘출석 주주’의 과반수 또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우호 주주 지분 수량이 고정된 상태에서 회사는 주주들이 출석하지 않을수록 표결에 유리하다. 주주들이 적게 참석할 만한 날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단, 상대측의 지분이 고정돼 있으면서 소액주주의 비중이 적은 경우라면 이러한 장점은 다소 줄어든다. 주총 분산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가 무색하게 올해도 주총 쏠림 현상은 여전했다. 한진칼은 상장사들의 주총이 가장 많은 날인 3월 27일을 주총일로 정했다.

양측의 회사 발전 방안은 어떨까. 회사측은 지배구조 개선, 경영 투명성 강화, 유휴자산 및 비주력사업 매각, 주주가치 제고, 기업문화 개선 등을 제시했다. 3자 연합은 전문경영인 선임과 더불어 적자에 허덕이던 아시아 최대 항공사 JAL의 비약적인 턴어라운드를 이루어 낸 일본 3대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의 전략을 적용하고자 했다. 핵심은 비행기 내에서 통신과 직원들을 통해 마진율이 높은 면세품 판매를 증대하는 전략과 각 단위별 채산성 관리를 극대화하는 아메바 경영에 있다. SKT의 전 부회장과 관리회계 전문가를 이사 후보로 추천한 이유이다. 하지만 100군데 이상의 언론과 기자간담회를 했다는 3자 연합의 제대로 된 입장과 전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기사의 대부분은 어디가 이길까, 누가 누구 편인가를 다루는 대결 구도였다.

자문사들의 의견은 각각 달랐다. 크게 ‘회사측 찬성/3자 연합 기권 권고’, ‘회사측 반대/3자 연합 찬성’으로 나뉘었다. 당 연구소는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있는 사외이사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찬성했다. 어느 한쪽이 옳다는 대결 구도보다는 회사의 성장 전략, 혼란스러운 시국의 경영 안정화와 건전한 견제와 균형을 위한 이사회 효율성 등의 전체 최적화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칫 이사회 비대화 우려가 있을 수 있는데, 해외 사례로 볼 때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회사측, 3자 연합의 정관 제안 중 건전한 지배구조를 지향하는 안건들이 꽤 있었지만, 양자택일의 투표로 모두 부결된 것은 매우 아쉽다. 정관은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치열한 방향성 투표만으로는 통과될 수 없다.

결과는 회사측의 완승으로 끝났다. 캐스팅 보트로 여겨진 국민연금이 회사측 편을 들어줬고, 3자 연합 중 하나인 반도건설이 공시 위반으로 3.2%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주주 적격 흠결에 이어 법률 검토의 허점을 이번에도 드러냈다. 최근에도 지분 취득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측의 상생과 공존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회사 발전을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어떤 전략이 더 좋은지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해법을 찾아가는 이사회를 보고 싶은 건 필자만의 희망 사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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