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팡의 질주에 ‘사람’이 안보인다

입력 2020-04-02 17:27 수정 2020-04-0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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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 유통바이오부 기자

“우리도 살고 싶다”

2월 한 온라인 유통업체 서버가 마비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장기간 ‘집콕’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주문량이 폭주한 것. 시간을 두고 나눠서 주문하던 것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주문하다 보니 결국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뛰어야만 하는 배달 노동자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소비자들로선 클릭 한 번이면 생수든 쌀이든 필요한 물건이 다음 날 문 앞까지 배송되니 편리함의 극치다. 편리한 건 너무나 잘 알겠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 대량 주문에, 야간 배송에 열악한 환경에서도 휴식 없이 달려야 하는 배달 노동자들의 절규를 보고 듣자니 도의적으로 주문 버튼을 눌러도 되는지 망설여진다.

코로나19의 확산은 그간 관심 두지 못했던 사회 구석구석 취약한 부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생활의 편리함을 안겨준 쿠팡의 배송이 그중 하나다. 쿠팡이 유통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건 ‘로켓배송’ 덕이다. 쿠팡은 누구보다 빠른 ‘익일배송’, ‘당일배송’에 이어 ‘새벽배송’까지 혁신을 거듭했다. 배송으로 성장한 쿠팡이지만, 정작 배송을 책임지는 ‘쿠팡맨’ 퇴사율은 75%에 달할 만큼 처우에 소홀했다.

쿠팡맨 노조에 따르면 쿠팡맨 1인 배송 물량은 해마다 늘었고, 늘어난 물량을 일정 시간 내 배송해야 해 휴식을 보장받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물량은 급증했지만, 쿠팡은 쿠팡맨 고용을 늘리지 않았다. 신입 쿠팡맨이 새벽 근무 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건 ‘예견된 일’이었다는 게 쿠팡맨 노조 측 주장이다. 과로에 시달리던 쿠팡맨들은 휴식권 보장, 물량의 무게와 배송지를 고려한 배송환경을 마련해 달라며 회사에 호소했다. 쿠팡의 대답은 쿠팡맨 건강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상담 서비스를 시행한다는 것뿐, 휴식권 보장과 물량 조정 등에 관한 조치는 없었다.

쿠팡맨 사망 사고 이후 커뮤니티에선 생수, 쌀 등 중량이 무거운 물품을 대량으로 주문하지 말자며 소비자가 서로를 단속한다. 이런 배려도 물론 중요하지만, 배달 혁신 업체의 모범적 움직임은 더 막중하다. 편리함을 향해 질주하는 혁신 속에 ‘사람’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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