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ㆍ소ㆍ영' 절벽…산업계에 울리는 사이렌

입력 2020-04-05 11:00 수정 2020-04-0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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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악화→소비 침체→영업 활동 제한→기업 실적 악화…보유자금으로 버티는 '캐시버닝' 형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산업계가 고용과 소비, 영업 마케팅 활동 등이 모두 위축된 '고ㆍ소ㆍ영' 절벽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위기에 처한 기업들은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고, 신규 채용도 줄인다. 고용 시장이 충격을 받으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기업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적극적인 영업 마케팅 활동에 나설 수도 없다. 소비 침체는 결국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5일 각 업계에 따르면 먼저 우려했던 코로나발 '실업 대란' 현실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폭탄을 온몸으로 맞은 항공업계에서 먼저 시작됐다.

(그래픽=이민지 기자 leem1029@)
(그래픽=이민지 기자 leem1029@)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은 4~5월 전체 직원의 45%에 이르는 750명을 내보내기로 했다. 1~2년 차 수습 부기장 80여 명에 대해선 1일 자로 계약을 해지했다.

형편도 녹록지 않은 다른 항공사들로 대규모 실업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항공업계뿐 아니라 정유, 자동차 등 산업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

에쓰오일은 사상 최초로 희망퇴직 검토 중이다. 정유업 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기술직과 사무직을 포함한 만 45세 이상 직원 2600여 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대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은 협력업체로 번져 고용시장이 연쇄 충격을 받는다.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당장 생계를 위협받게 되고 소비는 더욱 침체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2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매년 20만~30만 명대를 유지했던 1명 이상 사업체 종사자 증가폭이 10만 명 대로 떨어졌다.

신규 채용도 줄어들 전망이다. 이미 주요 대기업들이 채용 일정을 뒤로 미뤘다.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상반기 대졸자 공채를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지난달 말 기준 채용공고가 전년 동기 대비 29.8% 줄었다. 잡코리아 설문조사에서도 응답기업 중 74.6%가 채용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했다고 답했다.

소비 심리 역시 그야말로 암흑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같은 달 대비 18% 줄었다.

국내 완성차 5사의 3월 글로벌 판매 역시 15% 감소했다. 미국 시장에서도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43%, 18%씩 전년 대비 판매가 감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도쿄올림픽 개최가 내년으로 연기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여파로 도쿄올림픽 개최가 내년으로 연기됐다. 로이터연합뉴스
TV의 경우, 그나마 기대했던 올림픽 특수가 도쿄올림픽 연기라는 암초를 만났다. 올해 글로벌 TV 판매 전망은 마이너스 9%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유통망도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확산세가 가장 큰 북미와 유럽의 가전 유통채널은 사실상 영업 중단 상태다. 하루 수천 명이 찾던 미국 최대 가전 판매점 베스트 바이와 유럽 최대 가전 매장인 '미디어막트'도 매장이 문을 닫았다.

만들 곳도, 팔 곳도 없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다.

B2B(기업 간 거래)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달 철강 수출액은 24억6000만 달러로 전달 대비 6.5% 줄었다. 올해 1월 이후 3개월 연속 내림세다.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한 것도 수출에 대형 악재다. 국내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단가를 떨어뜨리고 조선, 중공업 업계의 수주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의 ‘2020년 2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석유제품의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가 전 산업에서 가장 낮은 59.7을 기록했다.

▲2020년 삼성전자 언팩 행사에서 한 관람객이 애플 아이폰11프로로 삼성전자 갤럭시Z플립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0년 삼성전자 언팩 행사에서 한 관람객이 애플 아이폰11프로로 삼성전자 갤럭시Z플립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게다가 기업들은 본격적인 제품 판매에 나서야 할 시기에 제대로 된 오프라인 영업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소비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은 고육지책으로 온라인에서 제품을 공개하고, 언택트(비대면)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저마다 생존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언택트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이용자 없다"며 "차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예약하면 전문가가 방문해 차를 받아 인근 타이어 교체점에서 서비스받도록 하는 비대면 서비스 내놓았는데,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신제품인 맥주 제조기 '홈브루'를 내놨지만,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시음행사를 할 수 없어 난감한 눈치다.

결국 향후 한두 달은 사실상 '캐시버닝(쌓아놓은 돈 태워먹기)' 상태로 버텨야 하는 처지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임원들의 월급을 반납받는 등 생존을 위한 유동성 확보 전쟁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고용과 소비, 생산, 유통, 영업 등 모든 부문에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며 "가진 자금으로 누가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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