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세계 경제를 녹아웃 상태로 내몰고 있다. 수요와 공급을 마비시키면서 실물과 금융시장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형국이다. 코로나발(發) 경제 쇼크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글로벌 경기 위축을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국 경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물론 일부 대기업도 구조조정 및 도산 공포에 휩싸여 있다.
국가경제 성장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건설업계도 죽을 지경이다. 코로나19 확산과 방역으로 공사에 차질을 빚는 건설 현장이 늘고 있고, 국제유가 급락으로 연초만 해도 회생 기미를 보이던 해외건설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올해 경제 전망은 암울함 그 자체다. 0%대 경제성장률은 고사하고 마이너스로 주저앉을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극한 위기에 놓인 우리 경제가 코로나19 파고를 넘어 활력을 되찾고 다시 성장하려면 정부의 과감한 재정 확대와 함께 친기업·친시장 정책으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사업 환경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혁파해 기업 활동에 활기가 돌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건설 분야만 들여다봐도 투자 확대는커녕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들로 가득차 있다. 각종 인허가 단계는 물론 원ㆍ하도급 관계에서부터 입찰ㆍ낙찰제도, 품질, 안전,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행정적ㆍ절차적 규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규제의 내용도 예방보다는 사업자에 대한 처벌 강화에 치우쳐 있다.
건설업 부실벌점 제도만 해도 그렇다. 국토부는 최근 부실벌점 산정 방식을 전면 개편하는 내용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부실벌점 강화로 건설사를 옥죄겠다는 발상이다.
벌점 산정 방식을 현행 평균(현장별 총 벌점을 현장 개수로 나누는 것) 방식에서 합산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100개 건설현장에서 총 10점을 받은 건설사는 종전엔 벌점 0.1점이 부과되지만 앞으로는 10점이 부과된다. 사실상 1개 현장에서 벌점 1점을 받은 회사와 100개 현장을 운영하면서 벌점 1점을 받은 회사를 같은 벌점 1점 회사로 보겠다는 것이다. 사업장이 많은 건설사일수록 벌점이 늘어나는 구조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업장을 많이 거느린 건설사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벌점으로 인해 공공공사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시공능력평가액도 감액되고 아파트 선(先)분양도 제한을 받는다.
결국 부실벌점제는 코로나 사태 와중에 건설사들의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극도로 위축시킬 게 뻔하다. 더욱이 선분양 제한은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중소건설사를 주택시장에서 내몰아 ‘주택 공급 위축→집값 불안’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 컨소시엄을 구성한 공동도급 공사의 경우 종전엔 출자 비율에 따라 부실시공 벌점을 나눴으나 앞으로는 대표 건설사에게만 벌점이 부과된다. 결국 사업 현장이 많고 대표사로 시공을 하는 기업만 독박을 쓰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건설사들은 컨소시엄 구성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이는 SOC(사회기반시설) 등 공공공사 입찰 차질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가히 '처벌 만능주의의 결정판'으로 불릴 만하다.
부실공사를 예방하고 안전 관리를 강화하자는 개정안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건설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벌점 부과가 기업 경영을 접어야 할 만큼 과도해선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는 틈만 나면 규제 혁신을 부르짖었다. 규제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도 시행하고 있다. 규제개혁신고센터와 규제개혁신문고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여태까지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 업계에선 오히려 이 정부 들어 건설산업에 대한 규제가 더 많아졌다고 토로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건설산업은 아직도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의 근간이자, 180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국민의 일터다.
건설산업이 경착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설 전 분야에 깔려 있는 덩어리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리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