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은행 대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으로 돈줄이 말라가는 데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이 8일 내놓은 ‘3월중 금융시장 동향’에서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이 901조4000억 원으로 2월보다 18조7000억 원 늘었다. 통계가 작성된 2009년 6월 이래 역대 최대폭의 증가다. 대기업이 10조7000억 원,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 증가분이 8조 원이다.
가계대출도 전달보다 9조6000억 원 늘었는데, 이 또한 2004년 이후 가장 많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 증가분 6조3000억 원을 뺀 3조3000억 원은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이다. 한은은 이상 열풍이 분 주식투자를 위해 가계가 빚을 낸 수요가 컸다고 해석했지만, 영세 자영업자 대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가계 모두 은행 빚으로 버티는 실정인 것이다. 특히 2월 대기업 대출이 회사채 발행 확대 등으로 전월보다 2000억 원 감소세를 보였다가, 3월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이다. 대기업은 통상 은행보다 금리비용이 낮은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왔다. 그러나 채권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고 자금조달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장외채권시장 동향’ 자료에서 3월 회사채 발행규모가 5조550억 원으로, 2월(12조3380억 원)보다 7조2830억 원이나 쪼그라든 데서 알 수 있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신용 추락의 위험이 커져 회사채 발행 시장이 위축된 것이다. 특히 신용이 비교적 우량한 AA등급 회사채 발행이 전월 8조2010억 원에서 3월 1조6210억 원으로 급감했다.
기업대출은 앞으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자금난이 심화하고 대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4월부터 시중은행을 통해 소상공인에 대한 초저금리 대출 3조5000억 원의 공급에 나섰다. 기업들에 대한 금융지원과 채권시장안정펀드도 가동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36조 원 이상의 무역금융을 추가로 공급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거래 위축으로 타격이 심한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파격적인 금융지원책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몰려드는 대출 신청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데다, 신용을 따져야 하는 은행들의 문턱이 여전히 높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기업들의 돈가뭄은 규모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자금조달도 한시가 급한 곳이 많다. 대책이 겉돌지 않도록 신속하고 원활한 금융지원으로 실기(失期)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