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감산 합의 ‘산 넘어 산’...사우디·러 합의했더니 이번엔 멕시코가 ‘어깃장’

입력 2020-04-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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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멕시코에 하루 40만 배럴 감산 요구...멕시코 “10만 배럴 이상 감산 힘들다”

▲멕시코산 원유 가격 추이. 출처 블룸버그통신
▲멕시코산 원유 가격 추이. 출처 블룸버그통신
산유국들이 국제유가 급락 저지를 위해 긴급 회동에 나선 가운데 멕시코가 의외의 복병으로 등장하면서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9일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대체인 OPEC플러스(+) 긴급 화상회의에서 멕시코의 거부로 감산 합의가 불발됐다. 9시간 넘게 이어진 회의에서 OPEC+는 5~6월 두 달간 하루 100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잠정 합의했으나 멕시코가 이를 거부하고 화상회의에서 퇴장했다.

1000만 배럴은 글로벌 산유량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하루 250만 배럴씩 감산하고, 이라크가 100만 배럴, 아랍에미리트(UAE)가 70만 배럴, 나이지리아가 42만 배럴, 멕시코가 40만 배럴 등 나라별로 감산 부담을 일부 떠 맡기로 했다.

그러나 멕시코가 어깃장을 놨다. 하루 40만 배럴의 감산을 요구받은 멕시코는 10만 배럴 이상의 감산은 힘들다며 동참을 거부했다.

22개국의 동참으로 감산 합의가 임박한 듯했으나 멕시코가 변수로 떠오르면서 최종 합의가 결렬되자 미국이 개입하고 나섰다. 미국은 멕시코 할당량을 상당 부분 떠 안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멕시코 설득에 나섰다.

전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하루 25만 배럴 추가 감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OPEC+가 멕시코에 요구한 40만 배럴 가운데 25만~30만 배럴을 미국이 메워주겠다는 것이다. 몇 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도 합의 사실을 재확인했다.

미국과 멕시코 합의에 따라 OPEC+ 협상 타결이 임박해 보였으나 10일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장관 회의에서도 끝내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우디가 멕시코의 추가 감산을 계속 고수해서다.

이전 협상에서 대립했던 사우디와 러시아가 겨우 합의점을 찾았더니 이번엔 멕시코가 말썽부리면서 감산 합의가 ‘산 넘어 산’의 형국이 된 셈이다. 사우디와 멕시코는 이날까지 사흘째 양자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서로 입장을 굽히지 않아 타결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원유 수요가 급감한 데다 사우디와 러시아 간 치킨게임으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멕시코도 타격을 입었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두 악재 속에 30%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자국의 감산을 꺼리는 이유는 정치적인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멕시코 국영석유회사 페멕스(PEMEX)는 생산시설 노후화 등으로 지난 15년간 생산량이 절반으로 급감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있는 상태다. 2018년 취임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페멕스 회생을 역점 과제 중 하나로 삼고, 현재 하루 약 170만 배럴인 생산량을 2024년까지 25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OPEC+가 요구하는 40만 배럴 감산은 이 같은 목적 달성을 어렵게 만든다.

또 멕시코가 감산 압력에서 계속 버틸 수 있는 데에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가 급락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헤지’ 거래다. 멕시코는 지난 20년 동안 원유와 관련해 ‘풋옵션’(특정가격에 팔 권리)을 사들였다. 유가가 급락해도 미리 정한 가격에 원유를 팔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에 급할 게 없다는 것이다. 이 헤지는 지난 20년 동안 유가 하락 국면에서 멕시코를 방어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 유가가 붕괴됐을 때 51억 달러(약 6조2000억 원)를 벌었고, 사우디가 벌인 또 다른 가격 전쟁 이후인 2015년과 2016년 각각 64억 달러와 27억 달러를 받았다.

아르투로 에레라 멕시코 재무장관은 최근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보험이 싸진 않았다”며 “그러나 지금과 같은 때를 위한 것이었다. 정부 재정은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삐걱대는 감산 합의 소식에 9일 국제유가는 9.3% 폭락해 배럴당 22.76달러에 마감했다. 최대 하루 2000만 배럴 감산 기대에 못 미친 실망감이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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