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2013년 대한문 집회 당시 부당하게 강제력을 동원한 경찰 간부들을 기소하라며 낸 재정신청이 기각됐다. 사건 심리 기간인 1년 5개월 동안 경찰의 위법한 조치였다는 취지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으나 재정신청 사건 재판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은 모순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30부(재판장 김필곤 부장판사)는 6일 권영국 변호사(전 노동위원장), 류하경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 9명이 대한문 집회 책임자인 남대문경찰서장 외 1명을 상대로 낸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한 고소ㆍ고발인이 법원에 공소제기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전국 고등법원이 재정신청 사건을 담당하고 있으며, 법원이 받아들이면 검찰은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 및 수사 기록만으로는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따라서 이 사건 재정신청은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이에 권 변호사 등은 9일 재항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류 변호사는 “(결정문에) 결정 이유가 전혀 없다. 소액 재판을 제외하고 판결문이나 결정문에 이유가 나와 있지 않은 경우는 없다”며 “이는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2013년 7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로 숨진 해고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분양소를 철거한 뒤 화단을 만들고 집회 신고를 불허하면서 시작됐다.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집회가 불허되자 효력정지 신청을 내 법원의 인용 결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경찰은 질서유지선을 설정해 집회를 막았다. 민변 변호사들은 이 과정에서 경찰에 항의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체포치상 혐의 등으로 체포됐고, 검찰은 권 변호사 등을 기소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해 1월 권 변호사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재정신청과 관련 있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과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는 무죄로 최종 판단했다.
집시법 위반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류 변호사도 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원심이) 집회 장소 안 화단 앞 질서유지선 설정과 경찰관 배치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며 “질서유지선 효용 침해는 질서유지선이 적법하게 설정된 경우에,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법한 경우에 한 해 성립한다”고 지적했다.
류 변호사는 "재정신청 재판부에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다 제출했다"며 "(그런데도 기각된 것은) 법원의 재정신청 심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뤄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보통 (재판부는) 대법원과 정면으로 다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기각 결정을 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문에 내용이 없어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