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법률-이혼] 우리나라도 혼전계약서를 인정할 때가 됐다

입력 2020-04-2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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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속 이태오(박해준 분)는 여다경(한소희 분)과 재혼할 예정이다. 이태오는 이혼한 경험이 있는데 이때 재산분할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어, 재혼을 생각하면서도 혹시 또 재산분할 문제로 곤란을 겪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이태오는 고민 끝에 여다경에게 혼전계약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 혼전계약서에는 결혼 전에 각자 가지고 있던 재산은 이혼할 때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며, 혼인 중 생긴 재산은 이태오가 80%, 여다경이 20% 비율로 나누기로 한다는 내용을 적었다. 나중에 둘이 이혼을 하게 되면 이태오는 이 내용대로만 재산분할을 해주면 될까.

이태오와 여다경이 합의로 이혼하면서 이와 같은 내용으로 재산분할을 한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이태오와 여다경이 재판으로 이혼, 재산분할을 하게 된다면 이 혼전계약서는 효력이 없다. 우리 법원은 부부가 이혼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합의를 했더라도 재판을 통해 재산분할을 하게 되면 이러한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다경이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하게 되면 법원은 혼전계약서 합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태오가 혼인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있고, 재산분할 비율도 50대 50으로 할 수도 있다.

우리 민법에 ‘부부재산계약’이라는 제도가 있기는 한데, 여기에는 ‘혼인 중’ 재산 관계에 관한 것만 정할 수 있다. 부부재산계약에 이혼 재산분할에 관한 내용도 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필자는 무리한 해석이라고 생각하며, 법원이 재산분할을 하면서 이혼 재산분할 합의의 효력을 인정한 것을 본 적이 없다.

혼전계약을 하려는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은 이혼 재산분할 문제지, 혼인 중 재산 관계에 관한 것은 별다른 관심사가 아니다. 필자는 꽤 많은 가사 사건들을 처리해 봤지만, 혼인 중 재산관계에 관한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혼 재산분할에 대비해 혼전계약서 작성을 문의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듯이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는 혼전계약서를 인정하고 있고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필자가 접해본 사건 중 외국에 거주하던 한국 사람들이 이혼 재산분할에 관한 합의를 하고 외국법에 따라 이혼과 재산분할을 하기로 합의를 한 사례가 있었다. 이 부부가 한국에서 이혼 소송을 하게 됐는데 우리 법원은 당사자들 합의 내용대로 재산분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 법원은 혼전계약의 효력을 인정하는데 부정적이다.

필자는 이제 우리나라도 이혼할 때 재산분할 문제를 당사자들이 미리 정할 수 있는 혼전계약서를 인정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부부재산계약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혼전계약을 제도로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법원은 이혼 직전에 당사자들이 재산분할에 관한 합의를 했더라도 재판을 통해 재산분할을 하게 되면 당사자들이 한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데,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지나치게 법원이 이혼 재산분할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산분할 대상이나 비율에 관한 명확한 기준도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와 같이 법원이 재산분할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혼인을 꺼리게 되는 측면도 있다. 특히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재산을 형성한 사람들이 결혼하거나 재혼을 하는 경우에 더욱 문제가 된다. 혼전계약서가 당사자들의 합의하에 아무런 문제 없이 체결되었다면 효력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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