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마다 1달러씩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마이너스(-)40달러 아래로 주저앉았다.”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에 원유 선물 트레이더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이너스 유가 다음은 뭘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원유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장 참가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세계 3대 유종 중 하나인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5월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무려 305% 폭락해 배럴당 -37.63달러로 마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원유 수요가 실종된 가운데 원유 저장공간마저 한계에 이르자 선물 트레이더들이 원유 인수를 피하기 위해 투매한 것이 마이너스 유가를 불렀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외출을 하지 못하면서 석유 수요가 급감, 정제시설과 보관시설, 파이프라인, 유조선에 이르기까지 석유산업 전체의 원유 저장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원유 선물 거래가 5월물에서 6월물로 넘어가는 ‘롤오버(Rollover)’가 일어나면서 시장의 혼란을 더했다. 5월물 계약을 넘기려 해도 이를 인수하려는 실수요자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 사라져서 트레이더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자신의 계약을 정리하려 한 것이다. 아울러 선물계약 만기가 다가오면 실제로 원유를 배달할 의사가 없는 투기꾼들을 시장에서 쫓아내게 된다. 다수의 선물 계약을 통제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만기 시 계약을 정리해야 해서 이런 강제 판매가 유가 하락 압력을 가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설명했다.
그러나 유가 전망이 이날처럼 충격적으로 어둡지는 않아 보인다. 일부 국가가 서서히 경제 활동을 재개하면서 원유 수요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5월 1일부터는 산유국들의 감산도 시작된다. 유가가 마이너스권에 머무는 만큼 감산을 꺼리던 나라들도 적극 동참할 수 밖에 없다. WSJ는 “이날 마이너스 유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촌극일 뿐”이라며 “5월물 계약 만기일인 21일 이후로는 WTI 가격이 다시 플러스(+)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날 5월물 가격은 -37.63달러에 마감했지만, 6월물 가격은 18% 폭락했어도 배럴당 20.43달러에 마감해 20달러 선을 지켰다. 11월물은 배럴당 31.66달러로 장을 마쳤다. 결제월이 멀수록 선물가격이 높아지는 전형적인 ‘콘탱고(Contango)’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WSJ는 늦어도 초가을까지는 세계 각국이 대부분 코로나19에 멈춘 경제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향후 유가가 다시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로 콘탱고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이 정도의 혼란은 5월물에 그칠 것”이라며 “이날 5월물 가격이 극도의 변동성을 보였지만 하루 동안 세계 원유 수급전망이 급변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CNBC방송은 “5월물 계약 만기일인 21일이 지나면 WTI는 다시 배럴당 20달러 선을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CME그룹에 따르면 5월물 계약 건수는 약 12만6400건에 그쳤지만, 6월물은 80만 건에 육박했다.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 공동 설립자는 “장기적으로 석유 시장 전망은 밝아 보인다”며 “미국 석유 시추전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고, 5월 1일부터는 산유국의 감산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관건은 역시 코로나19다. 이 사태가 장기화하면 매월 선물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이날과 같은 충격이 재연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