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이 주인을 잃고 방황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빅토리아시크릿을 인수하기로 했던 미국 사모펀드 시카모어파트너스가 그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고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시카모어는 대형 의류업체 L브랜즈로부터 지난 2월 빅토리아시크릿과 핑크 브랜드 지배지분을 5억5000만 달러(약 68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합의의 일환으로 50여 년 간 회사를 이끌면서 빅토리아시크릿 성공 신화를 이끌었던 레슬리 웩스너 L브랜즈 설립자는 회장과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당시 인수 합의로 빅토리아시크릿 가치는 약 11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가 터지면서 사태는 급변하게 됐다. 시카모어는 빅토리아시크릿 모회사인 L브랜즈가 지난달 미국 매장을 폐쇄하고 직원 대부분을 일시적으로 해고하며 4월 매장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은 것은 인수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날 델라웨어 법원에 인수 철회 허용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식에 L브랜즈 주가는 이날 15% 폭락한 10.19달러로 마감했다. L브랜즈 주가는 시카모어가 빅토리아시크릿을 인수하기로 했던 2월에는 주당 20달러 수준이었는데 2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난 것이다.
기업계는 빅토리아시크릿을 둘러싼 이번 법적 분쟁이 인수·합병(M&A)을 추구했던 인수기업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인수를 철회할 기회를 주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날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시카모어는 이달 초 원래 계약보다 인수가를 낮추려고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난주 L브랜드는 인수가나 조건을 수정하는 재협상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L브랜즈는 그동안 계약을 준수했으며 코로나 비상사태 국면에서 매장 폐쇄와 직원 해고는 어쩔 수 없는 조치인데 시카모어가 인수가를 깎으려고 억지를 부린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과 불확실성으로 M&A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지금까지 미국의 M&A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57% 급감한 2337억 달러에 그쳤다. 제록스홀딩스는 지난달 말 휴렛팩커드(HP)를 300억 달러 이상에 적대적 인수한다는 계획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빅토리아시크릿 분쟁과 비슷하게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도 30억 달러에 달하는 위워크 주식을 기존 주주와 종업원으로부터 공개 매입한다는 계획을 철회해 갈등을 빚고 있다. 위워크 특별위원회는 이달 초 소프트뱅크가 약속을 어겼다며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