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희의 뉴스카트] ‘빠름’이 부른 참사와 ‘느림’이라는 배려

입력 2020-04-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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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바이오부 부장대우

#. 2011년 초 대학 입학을 앞둔 18세의 청년이 숨졌다. 피자 배달을 하던 그는 배달 도중 시내버스와 충돌 사고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당시 빠른 배달을 내걸었던 배달 서비스의 문제점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됐고, 결국 해당 업체는 ‘30분 내 배송’을 포기했다.

#. 2020년 3월 이커머스 소속 40대 배송사원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로 배송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은 하루 배송할 물량이 크게 늘었고, 노조 측은 해당 직원의 사망 원인으로 과로를 꼽았다. 이커머스의 빠른 배송이 부른 참사인 셈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한다. 그만큼 속도에 민감한 것이 한국인이다.

인터넷 전용선 설치가 당일 가능하고 오늘 주문한 물건이 당일 또는 익일 배송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한국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의 빠른 성장을 이룬 동력임을 부인하진 않는다.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 반열에 오르는 데는 분명 한국인들의 빠른 업무 처리 능력과 빠른 습득 능력이 한몫했으리라.

2011년 배달 청년의 죽음 후 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빠름’이 부른 안타까운 사고는 진행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달 음식점들이 배달 시간을 촉박하게 약속하지 않는 문화가 확산된 점뿐이다.

배달 시장에서는 자정노력이 어느 정도 반영됐지만, 오프라인 쇼핑보다 커진 온라인 쇼핑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빠른 배송 경쟁이 한창이다.

새벽배송에 이어 당일배송까지 이커머스의 경쟁에 소비자는 편리하다.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 들고 가야 하는 준비물을 미리 구매하지 못해도 새벽배송이나 당일 배송으로 빠르게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집 앞까지 배송되는 서비스를 굳이 마다할 소비자는 없다.

그러나 배송사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한정된 배송 사원에게 물량이 몰리고 또 배송 시간까지 정해져 있다면 그의 노동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커머스 배달사원이 사망하자 해당 기업 노조는 과로사를 주장했다. 가족들은 생전의 그가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조차도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고 호소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며 문득 이커머스 이용 중 ‘급하지 않은 제품인데 굳이 빨리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결제 전 배송 속도에 관한 선택사항이 있는지 스마트폰 화면 곳곳을 살펴봤다. 역시나였다. 빠른 배송을 선택할 수는 있어도 ‘조금 늦게 배송해도 된다’는 선택사항은 없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시기, 작지만 큰 배려 중 하나로 꼽힌 것은 저소득층과 노약자를 위해 마스크를 양보하는 문화였다. 주변에서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지 않고 천 마스크를 세탁해서 쓰며 솔선수범하는 이들도 여럿 만났다.

이들의 배려라는 울타리에 배송사원을 포함하면 어떨까. 2000년대 중반 슬로푸드가 인기를 얻었다. 패스트푸드가 줄 수 없는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주는 깊은 맛과 정성을 들인 요리는 조금 늦더라도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오늘도 이커머스를 통해 장을 보며 생각해본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요’라는 메시지 하나가 그들의 어깨에 드리워진 무거운 짐을 조금은 덜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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