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금기 깬 돈 풀기...’선 넘는다’ 경고음

입력 2020-04-28 14:25 수정 2020-04-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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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발 경제 위기에 경기 부양 명목으로 금기 깬 무분별한 대출 논란 -정크본드까지 매입하면서 도덕적해이 부추긴다 지적 -‘경기 부양 압박’ 정치권에 휘둘리며 독립성 훼손 논란도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통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중앙은행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연준이 오랜 금기를 깨고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 부양’이라는 명분 하에 기업과 지방정부에 전례 없는 규모의 대출을 해주면서 누가 돈을 빌리는지, 어떤 조건인지, 대출 회수에 위험성은 없는지 따지지 않는 ‘묻지마 대출’을 하고 있어서다. 또 미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며 연방정부의 부채 급증에 일조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난해 4조 달러(약 4900조2000억 원)에 못 미치던 연준의 대차대조표가 8조~11조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2배이며, 미국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22일 기준, 이미 6조5700억 달러에 도달했는데, 전문가들은 대공황이나 2차 대전 때보다 연준이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애덤 토즈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는 “연준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가 몰고 온 재정적·경제적 충격 때문에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건드리지 않는 영역에 빠져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의 말처럼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연준의 조치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연준은 중앙은행으로서 모든 경제 상황을 고려해 각종 금융·통화 정책을 배후에서 조정한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며,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담보로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고 통화량도 조절한다. 필요 시에는 강력한 규제로 금융기관을 압박해 고위험 투자를 억제한다.

이런 연준에게 ‘묻지마 대출’은 금기시해온 것이다. 그러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나라가 봉쇄되고 사업장이 폐쇄되면서 경제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기업의 자금 숨통을 틔워줘 경제를 회생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이에 연준은 지난달 두 차례 임시 회의를 열고 금리를 ‘제로(0)’수준(0~0.25%)으로 끌어 내렸다. 이어 무제한 국채 매입,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금기시하던 낮은 등급의 회사채 매입을 통한 기업 대출까지 실시했다. 이에 3월 16일에서 4월 16일까지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790억 달러 어치의 국채와 증권을 매입했다. 2012~2014년 사이 한 달 850억 달러어치 매입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전인 셈이다.

연준은 미 재무부와 합작해 기업과 지방정부를 상대로 한 2차 돈 풀기도 준비 중이다. 미 의회는 지난달 27일 통과시킨 ‘코로나 구제·경제보장법(CARES)’에 정부 보증재원 예산으로 4540억 달러를 배정했다. 연준은 통상 정부 보증액 대비 10배 가량의 대출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연준의 무분별한 돈 살포에 경고의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매니지먼트 투자 책임자는 “파산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 없는 카톨릭과 같다”면 “시장은 참가자들이 손실 위험을 인식하고 있을 때 잘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연준이 시장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연준은 최근에 신용도가 투기등급으로 추락한 기업(타락천사)들의 회사채(정크본드)와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까지 매입한다고 밝혀 시장을 놀라게 했다. CLO는 주로 신용도가 낮은 하이일드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채권으로 금융시장의 시한폭탄으로 여겨져 왔다.

로레타 메스터 미국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준은 생존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대출해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기업이 생존에 실패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돈이 투입되고 있다는 데 있다.

연준이 지켜온 정치적 독립성도 위태롭다는 지적이다. 연준은 1972년 대선을 앞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압력에 굴복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독립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연준이 재무부 및 의회와 협력해 돈 풀기에 나서면서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의문이 커졌다.

정치인들은 이미 연준 압박에 나선 상황이다. 미국 여당인 공화당 소속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제롬 파월 의장에 보낸 서한에서 연준 기준에 부채가 이미 너무 많은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오일·가스 기업에 대출해 줄 방안을 짜내라고 요청했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과도한 평가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경제를 지키기 위해 대담한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독립성은 더 타격을 입는다”면서 “위기 때 긴급 대출하는 게 연준이 탄생한 배경”이라고 우려를 불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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