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발행 시장이 경색되면서 기업들이 수요예측 미달을 피하기 위해 일단 모집규모를 줄였다가 수요가 확보되면, 발행액을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30일 채권업계에 따르면 신용등급 ‘AA’인 기아자동차는 지난 14일 회사채 총 3300억 원 어치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다. 모집액의 2배를 넘는 매수 주문이 들어오자 발행액을 60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기아차는 만기별로 3년물 2500억 원, 5년물 300억 원, 7년물 500억 원 어치를 모집했는데, 주문액은 3년물 5500억 원, 5년물 500억 원, 7년물 1200억 원으로 총 7200억 원에 달했다.
이달 수요예측에 나선 회사들은 대부분 수요를 확보한 후 발행액을 늘리는 추세를 보였다. 신용등급 ‘AA-’인 CJ대한통운은 1500억 원의 회사채 발행을 목표로 지난 20일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모집액의 3배가 넘는 4600억 원의 유효수요를 확보했고, 발행액을 20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포스코에너지(신용등급 AA-)도 1500억 원을 모집하는 수요예측에 3600억 원의 주문이 들어오자 발행액을 2000억 원으로 늘렸다. 롯데지주(AA)는 1100억 원 모집에 2200억 원의 주문을 받고 발행액을 2000억 원으로 늘렸다.
일부 회사는 수요예측 이후 추가 청약을 받아 매수 주문보다 더 많은 액수를 발행하기도 했다. 호텔신라(AA)는 모집액 1500억 원에 매수 주문 2500억 원이 들어오자 주문액보다도 많은 3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롯데쇼핑(AA)은 모집액 2400억 원을 겨우 넘긴 2450억 원의 주문을 받는 데 그쳤지만, 3500억 원 규모를 발행했다.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투자자는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수요예측이 끝난 이후 발행 전까지 추가 청약할 수 있다. 발행사가 이를 받아들이면 수요예측 주문액보다 많은 액수의 회사채가 발행된다.
이에 일부 발행사는 회사채 발행 계획을 공시하면서 모집액보다 발행액을 늘릴 수 있다고 밝히고 최대 발행 가능한 금액이 얼마인지 공개해 증액 여지를 열어둔다. 기아차는 지난 9일 회사채 3000억 원을 모집한다고 공시하면서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회사채의 총액은 6000억 원 이하의 범위에서 변경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회사채 발행기업들이 잇달아 발행액을 증액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인 사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지난달 회사채 발행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수요예측 미달 사례가 연달아 발생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사 입장에서는 수요예측에서 주문액이 모집액에 미달하면 평판이 떨어지는 부담을 안게 된다”며 “지금 같은 시장 상황에서는 발행액 증액 가능성을 열어두고 모집하는 것이 발행사에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