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불 속은 위험해

입력 2020-05-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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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연 금융부 기자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반드시 시작되는 것이 있다. 뒷담화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되고 셋 정도가 적당하다. 각자 갖고 있는 ‘썰’을 풀 때 정보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알맞은 인원이다.

기자들이 모이면 취재원 뒷담화가 시작된다. 대부분 당국 수장 얘기다. 뒷담화가 되는 유형은 크게 3가지다. ‘주인공은 나야 나’ 형, ‘밀당’ 형, ‘이불 밖은 위험해’ 형으로 구분된다.

‘주인공은 나야 나’ 형. 모든 공을 자기 것으로 포장한다. 보도자료 주인공이 대부분 기관장이다. 통화하면 보도자료 내용도 숙지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봐도 원론적인 대답만 나온다. 그럼에도 통화는 ‘자신의 신념과 주장에 따른 결과’라고 끝난다.

‘밀당’ 형. 미친 듯이 애태우는 사람이다. 계속 전화를 남겨도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는 문자만 날아온다. 그럼에도 곧 연락을 준다는 마지막 문장에 하염없이 휴대폰을 바라보게 된다. 잠시 다른 일을 보다가 전화가 울리면 목소리를 가다듬고, 헛기침을 하고, 질문을 되새긴다. 하지만 화면 속 이름은 그분이 아닐 경우가 99.9%다.

‘이불 밖은 위험해’ 형. 앞의 두 가지 유형에 감사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도대체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다. 이런 유형은 퇴근 전까지 이동거리가 1㎞ 미만인 사람이다. 의전용 차를 타고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집무실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집무실 밖 상황에 관심이 없고 외부 평가에도 귀를 닫아 직원들만 애가 탄다.

한 기관장이 기자의 취재에 특정 피드백을 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의 한 마디가 기관의 이정표가 되고, 현 상황을 평가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담감은 기관장으로서 지고 가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무게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이불 밖은 위험해’ 형이라면 오늘만큼은 집무실 1㎞ 밖으로 용기를 내보기를 권한다. 이불 속이 더 위험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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