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역대 최악의 경영 환경이 고스란히 담긴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정유 3사의 영업손실만 3조 원 중반대로, 실적 발표를 앞둔 GS칼텍스까지 합치면 국내 정유사의 적자가 4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6일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에쓰오일(S-OIL)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3사의 영업손실이 3조345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손실은 1조775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11조1630억 원으로 12.6% 급감했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도 사정은 비슷하다. 에쓰오일은 매출액이 19.7% 감소한 5조1984억 원을 기록했으며 영업손실은 1조73억 원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현대오일뱅크도 매출액이 4조4166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1% 줄어들었으며, 영업손실이 5632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GS칼텍스가 이번 분기 5000억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정유 4사의 적자가 4조 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정유 4사는 지난해 벌어들인 돈 이상을 1분기 만에 몽땅 날리게 된 셈이다. 지난해 정유 4사의 연간 영업이익이 3조1000억 원이다.
정유사들은 이미 악화된 시황에 유가 급락으로 인한 대규모 재고 관련 손실 발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내외 석유제품 수요부진으로 인한 정제마진 약세라는 폭격을 맞았다.
통상 정유사가 원유를 산 다음 수입해 오기까지 2~3개월 정도가 걸리는데 그 사이에 원유 가격이 폭락해 비싼 값에 산 원료를 가지고 만든 제품을 싼 가격에 팔 수 밖에 없어 재고 관련 손실이 일어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석유 제품의 수요도 떨어져 제 가격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더해 환율 강세에 따른 환차손 영향도 정유사의 실적을 끌어내리는 데 일조했다.
정유업계는 이번 분기의 경영환경이 역대 최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셰일가스가 등장하며 국제 유가가 급락하며 타격을 입은 2014년 4분기 정유 4사는 1조1500억 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하며 ‘최악’이라고 평가했으나, 이를 가뿐히 뛰어넘는 위기가 눈앞에 닥쳐온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실적을 발표하며 “1962년 회사가 정유 사업을 시작한 이후 최악의 경영 환경”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버티기’에 나섰다. 코로나19에 따른 수요부진으로 시황 약세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공장의 가동 경제성을 찾기 위해 감산에 나서고, 비용 절감을 위한 효율화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 콤플렉스(CLX)의 원유정제시설(CDU)을 감량하고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2분기에는 설비 보수를 통해 1분기보다 15만 b/d를 감량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선제적 시황에 대응하기 위해 이달 9일부터 다음 달 하순까지 예정된 제2 공장 정기보수 동안 정유, 석유화학 생산설비의 효율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에쓰오일 역시 정유제품 수요 감소에 따른 가동률 조정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설비보수 등에 따른 계획된 가동률 조정은 일부 있을 예정이다.
아울러 정유사들은 장기적으로 정유사업에 치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대외 변수에 민감한 정유 사업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윤활유, 화학 사업 등 비정유사업의 역량을 높이고 배터리 등 신사업 확대 등의 노력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석유 시장은 올해 하반기에나 바닥을 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하반기로 갈수록 유가와 석유 수요가 회복하고 정제마진이 개선돼 실적 턴어라운드 역시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