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코로나19, 생존자본주의와 지배구조

입력 2020-05-06 18:01 수정 2020-05-0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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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장

최근 코로나19의 광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주요국들의 자본시장은 엄청난 충격을 겪었다. 필자의 금융계 지인들조차 “이런 시장은 정말 처음 본다”는 말만 반복해서 할 뿐이었다. 코로나는 향후 경제와 우리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세계 자본시장의 패러다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보인다. 기업지배구조 또한 이러한 변화의 파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그 논점들을 짚어보고 변화의 방향과 대응방안을 모색해 보자.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은 누가 뭐래도 ‘언택드(Uncontact)’다. 넷플릭스, 모바일 게임뿐 아니라 배달앱이나 화상회의 등 온라인 매체의 급부상을 우리는 이미 체험하고 있다. 웹과 모바일이 소비 행동과 경제의 중심이 된 것이다. 2020년 주주총회에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반영됐다. SKT가 주총을 ‘온라인 생중계’하기로 한 것이다. 시간·거리상의 제약으로 현장 주총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주주들을 위한 배려였다. 온라인상에서 경영진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실시간 질의응답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였다. 단, 전자투표는 주총 하루 전날까지였다. ‘전자주주총회’ 개념으로 직접 표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전자주주총회를 허용하는 규정이 없다. 상법 제364조(소집지)는 “총회는 정관에 다른 정함이 없으면 ‘본점 소재지’ 또는 이에 ‘인접한 지역’에 소집하여야 한다”라고 현장주총만을 규정할 뿐이다. 해외에서는 1993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에서 현장주총 외에 전자주총과 온·오프 병행 주주총회 방식을 회사법으로 규정하거나 정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터키에서도 2012년에 ‘전자적인 참가와 투표가 현장 출석이나 투표와 같은 효과가 있음’을 규정하고 모든 상장사에 대해 전자주총을 의무화한 바 있다. 반도체, 모바일, 게임, 5G 등 IT 강국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시기가 되었다. 이 경우 주총 활성화뿐 아니라 주주 없는 주총으로 인한 정족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2020년 2월 말~3월 말까지 약 한 달간, 전 세계 증시는 코로나 쇼크로 공포에 휩싸였다. 세계 증시의 계기판 역할을 하는 미국 다우존스 지수조차 하루에 10% 폭락하는 등 전 세계 주식시장은 하염없이 추락했다. 한국 종합주가지수(KOSPI)도 3월 19일 1458포인트로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일 기준 35%가량 급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가 전쟁으로 원유마저 폭락하여 ‘마이너스 가격의 원유’까지 보게 되었다. 코로나(Corona), 원유(Crude Oil), 부실기업 채권(Credit) 이슈 등 3C가 서로 뫼비우스 띠처럼 얽혀 미궁에 빠졌다.

전 세계는 일제히 돈 풀기에 나섰다. 미국 연준은 ‘무제한 양적 완화’를 선언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 회사채와 기업어음까지(CP)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일본중앙은행(JOB)처럼 ETF를 통해 상장기업 주식을 매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이를 바라보는 세계 지배구조 학계의 반응은 어떨까. ‘국가자본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입장과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자본주의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는 태도로 양분되고 있다. 이제 ‘자유방임의 자연상태’와 ‘관리된 경제 생태계’ 사이에서 국가별로도 자본주의 변화상을, 우리도 한국형 자본주의와 한국형 지배구조 생태계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특히 기업의 문제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 정부의 방침과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명확한 원칙과 절차적 정당성’이 요구된다.

금융위는 항공, 해운, 조선 등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7대 기간산업에 대해 “고용안정과 소중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지분을 취득하더라도, 기업가치 상승 시 이익은 국민과 공유한다.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의결권은 행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기간산업에서 ‘정부 주주’의 역할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업 자구책 연계, 대주주의 모럴해저드 방지와 낙하산 인사 제한 등 ‘운영과 매각’ 방침까지도 원칙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는 경제학 법칙도 다시 보게 했다. 주식과 채권은 원래 역의 방향으로 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엔 채권까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는 투자자도 자산 배분보다는 ‘현금 확보’만이 살길이기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 면에서는 당장 올해부터 배당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실제로 최근 보잉과 GM은 배당 중단을, 로열더치셸은 배당 66% 삭감을 발표했다.

현금 수혈을 위한 ESG 채권 쪽에서는 KB국민은행이 코로나 충격을 받은 중소기업 대출지원을 위한 채권을 발행했다. 기존 환경 관련(Green Bond) 위주에서 ‘사회적 채권’(Social Bond) 발행이 새롭게 주목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가 일깨워 준 가장 큰 교훈은 세상은 이미 ‘초연결사회’가 됐고, 인류는 ‘운명공동체’가 됐다는 점이다. 트럼프 시대 이후 각국은 보호무역, 이민 반대 등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왔다. 이제 ‘생존을 위한 뉴노멀’에 박차를 가할 때이다. 기업지배구조 외에도 사회지배구조와 환경지배구조를 포괄하는 새로운 글로벌 공조가 본격화하길 간곡히 기원한다. 생존 자본주의, 공동체 자본주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코로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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