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코로나 국난을 통과하며 떠오른 ‘명량’

입력 2020-05-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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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명량’이다. 1700만 명이 보았다. 영화 관람 등급이 연소자 관람 가능에다 영화를 두세 번씩 본 사람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사실 우리나라 영화 시장 크기에 이런 흥행 기록은 비정상이다.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명량’이 전대미답의 흥행 기록을 세울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스토리로 관객의 기대를 100% 만족시켜 주진 못했다는 게 영화계의 중평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대의 ‘운’이 따라줬다. 이걸 운이라고 표현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온 국민에게 크나큰 슬픔을 안겨준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불과 두 달 후에 영화는 개봉했다. 어처구니없는 이 대형 참사는 대한민국에 큰 물음을 던졌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국가란 무엇이며, 대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무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지 국가가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며, 또 존재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그간의 신산스러운 우리 현대사가 그런 작동을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명량’은 이런저런 헛헛함에 빠져 있던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에 따뜻함과 뭉클함 그리고 시대정신을 채워줬다. 바로 이순신이 보여준 ‘정신’ 때문이었다. 그 정신은 영화에서 이렇게 표현되었다. 아들 이회가 이순신에게 묻는다. “이참에 모든 걸 놓아버리시고 고향으로 돌아가시지요…. 설령 전장에서 승리한다 한들 임금은 반드시 아버님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순신은 나직한 음성으로 아들에게 이른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백성이 있는 법이다.”

실로 가슴 먹먹했던 장면이었다. 아마도 이 명장면 하나로 몇백만 명 이상의 관객이 극장을 더 찾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간단명료해 보이는 이순신의 언명은 왕도 사상인 민본주의를 상기시켜 주고 있지만, 내면에는 어떤 사상과 이념, 제도보다 그 위에 백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 조직, 단체를 위해 개인은 언제든 희생 또는 손해를 봐왔던 한국 사회에 개인과 시민과 국민이 얼마나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당시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화두로 던졌다. 이번 코로나 국난에 비로소 국가로부터 나 개인의 안전을 보호받았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집권당에 기꺼이 표를 던졌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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