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미의 고공비행] 4년전 악몽 반복되지 말아야

입력 2020-05-11 13:00 수정 2020-05-1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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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1일.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결정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던 날이다. 이후 한진해운은 5개월 만에 결국 파산을 고하며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40년을 버티며 세계 7위까지 올랐던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오랜기간 과도하게 용선에 의존하며 수 조원에 달하는 용선료를 지불해야 했던 점이 경영악화의 주 요인이었지만 사실상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현실감 없는 정책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정부는 이후 기업들에게 부채비율 200%를 넘지 못하도록 했고, 산업 특성상 천문학적인 가격의 선박을 사들이며 부채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었던 해운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한진해운은 보유했던 선박들을 매각하며 부채비율을 낮추는 대신 상당수 선박을 용선으로 전환했고 이것이 화근이 됐다.

결국 한진해운은 경영악화로 생존위기에 직면했지만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며 끝내 무너졌다. 금융논리에만 치중됐던 정부의 정책실패와 차일피일 미뤄지던 정부지원 부재가 한진해운을 포함한 한국 해운업 몰락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정부가 조선업계에 투척했던 수 조원에 달하는 지원 규모의 10분의 1만이라도 한진해운을 살리는 데 썼더라면 지금도 H마크가 새겨진 컨테이너선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글로벌 해운 시장을 휩쓸고 있을 수 있다. 또 한진해운의 알짜 노선들을 글로벌 경쟁 선사들에게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가 경제적 리스크'를 내세우며 대우조선해양을 적극 지원했던 정부가 한진해운에는 이중 잣대를 적용했다.

정부는 뒤늦게서야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미 한진해운은 사라졌고, 한국의 글로벌 해운 경쟁력이 나락한 후였다. 많이 뒤늦은 때였다.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 정부가 해운업에 대한 무지와 외면으로 일관하는 동안 다른국가 정부들은 자국 선사들을 목숨걸고 살려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3위 프랑스 국적선사 CMA-CGM다. 이 선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산위기에 처하자마자 정부로부터 국부펀드 통한 지분 투자방식의 자금 지원을 받아 여전히 '글로벌 TOP 3'를 지켜내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또 다시 '한진해운 파산'과 같은 아픔이 되풀이 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역풍을 맞아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를 느낀 기업들은 도움의 손길을 끊임없이 요청해왔지만 정부는 한동안 이를 지켜만봤다. 기업들의 하소연이 극에 달하자 정부는 '기간산업 40조원 지원'이라는 대책을 내놨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수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게다가 이 역시 6월이나 돼야 실행에 옮겨질 것 같다. 심각성을 인지하자마자 곧바로 통 큰 지원을 결단한 다른 국가들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의 기반이 되는 기간산업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해야 한다. 기간산업의 몰락은 기업뿐 아니라 국가 수준까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파산 사태도 단순히 우리나라의 한 기업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40여년간 갈고 닦아온 글로벌 해운시장의 네트워크와 노하우, 화주 등과의 신뢰가 깨지며 한국의 해운 경쟁력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더 이상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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