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분야에서 본격적인 협력에 나선 배경은 뚜렷하다. 5대 신수종으로 자동차 전지를 앞세운 삼성전자, 미래차 전략을 위해 향후 5년 동안 60조를 쏟아낼 현대차 모두 일본 기업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단독 면담의 배경에는 각 그룹이 처한 현안이 유성기어처럼 맞물렸다.
삼성그룹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톱3를 LG화학과 파나소닉, CATL(중국)에 내줬다. 현대차 역시 글로벌 톱5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각각 숙명처럼 여겨온 경쟁사와의 대결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 서려 있다.
먼저 삼성전자는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개선한 ‘전고체 배터리’ 원천 기술을 최근 확보했다.
배터리 출력은 지금보다 2배 넘게 증가했고, 내구성과 안전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기술을 담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사용한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는 이름 그대로 ‘고체’ 형태의 전해질을 쓴다. 액체보다 상대적으로 온도변화에 덜 민감해 추운 겨울 배터리 성능이 떨어질 염려가 없다. 여기에 액체 전해질 유출 우려가 낮아 안정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를 중소형 전기차에 장착하면 1회 충전으로 최대 800㎞를 달릴 수 있다.
나아가 1000회 이상 재충전도 가능하다. 현재 리튬-이온 배터리의 1회 충전 항속거리가 400㎞ 수준이고, 약 500회 충전하면 배터리 성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원천 기술을 개발, 최근 국제적 과학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관련 기술을 게재했다.
현재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기업이 일본 파나소닉이다.
현대차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차세대 전기차 시대의 게임체인저가 될 ‘전고체 배터리’가 절실한 현대차는 이를 바탕으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개발을 추진 중이다. 자동차 업계는 전고체 배터리를 전기차 시장 판도변호를 끌어낼 ‘게임 체인저’로 여기고 있다.
후발 자동차 업체마저 전고체 배터리를 확보하면 단박에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 가운데 전고체 배터리를 앞세워 차세대 전기차 시장 주도권을 선점한 곳은 일본 토요타다. 순수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에 집중했던 토요타는 전기차 시대를 대비해 전고체 배터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각각 경쟁상대로 꼽은 일본 파나소닉과 토요타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5월 동맹을 맺고 ‘조인트벤처(JV)’를 구성했다. 올해 JV 공장을 설립하고 2021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에 맞춰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선보일 계획도 내놨다.
나아가 일본 마쓰다와 스바루 등 완성차 메이커가 개발 중인 전기차에 토요타-파나소닉 JV의 전고체 배터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결국,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각각 경쟁상대로 꼽은 일본 기업이 동맹을 맺은 만큼,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배터리 협력체 구성은 당위성을 확보한 셈이다.
일본 토요타와 파나소닉 JV가 시장 선점을 추진하는 가운데 현대차와 삼성전자 역시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2025년이면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한 양산 전기차가 시장에 팔릴 것으로 보인다. 충전시간이 관건인데 양산전까지 해결할 수 있다”라며 “이를 통한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지금보다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