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팬데믹 시대, 언택트 사회의 암울한 미래

입력 2020-05-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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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 바이러스가 계속 변이하여 앞으로 감염력이 더 높은 변종 바이러스가 나올 것이 우려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언택트 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이후에 비대면·디지털 경제에 초점을 맞춰 첨단산업을 중점 육성하겠다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경제위기를 혁신성장의 기회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한다. 우리는 과거에도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며 경제체질과 산업구조를 혁신하여 새로운 성장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팬데믹이 유발하는 구조적 변화는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 감염병 공포로 탄생한 언택트 경제를 기술혁신에 의한 디지털 신경제와 같은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기술과 결합한 언택트 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은 팬데믹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희망사항에 그칠 수 있다.

팬데믹 시대의 언택트 소비는 디지털 경제에서의 온라인 소비와 질적으로 다르다. 디지털 경제에서 소비자는 편의성과 시간 가치를 위해 온라인 구매를 선택한다. 쇼핑과 구매에서 해방된 소비자는 여행, 문화, 공연, 오락, 여가, 외식 등의 체험 활동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미래에셋증권이 해외 호텔체인을 매입하고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재무적 투자가로 참여하는 것도 이런 기회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이 오프라인 유통의 활로를 체험과 엔터테인먼트에 두고 스타필드와 같은 대규모 복합쇼핑몰을 세운 것도 비슷한 논리이다.

맞다. 팬데믹만 없었다면 호황을 누릴 업종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아 빈사상태에 몰려 있다.

소비란 사람들이 많이 만나고 돌아 다녀며 활동해야 왕성해진다. 그런데 팬데믹 시대의 소비자는 감염을 피해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활동을 최소화한다. 맹수를 피해 동굴에 숨은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처럼 움츠린다. 이런 상황에서 언택트 소비란 안전과 생존을 위한 피치 못한 선택이다.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한 거리두기와 대인 기피 현상은 소비 수요를 위축시켜 대면 서비스와 대량 소비에 의존하는 전통산업을 몰락시킨다. 매출이 급락하면서 고정비용이 높은 장치산업과 대면서비스업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그 와중에 대규모 인력이 직장을 떠나고 있다. 이렇게 사라진 일자리를 언택트 산업을 키워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학도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모든 대학이 이번 학기 내내 대다수 과목을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하면서 온라인 강의 인프라와 방역을 위해 예상하지 못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의 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만일 다음 학기에도 그다음 학기에도 계속 비대면 수업을 해야 한다면 그 넓은 캠퍼스와 많은 인력을 유지하며 살아날 대학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다.

감염병 공포로 만들어진 언택트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한대로 커진다. 시장 주도의 개방형 경제은 ‘무질서’, 정부 주도의 폐쇄형 경제는 ‘질서’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서 마스크의 생산과 유통을 정부가 통제하며 마스크 수급이 안정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에서 사재기 광풍이 일어난 것은 집단적 패닉 상황에서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치명적 전염병보다 대중의 공포심이 더 무섭다.

팬데믹 시대의 비대면 사회에서 나타날 가장 심각한 문제는 편견과 인간성 상실이다. 감염자와 확진자를 둘러싼 책임 논란은 인종, 지역, 종교, 세대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n번 방 사건은 언택트 사회에서 비인간성이 일상화된 암울한 모습을 보여준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젊은이들이 비대면을 악용하여 비인간적 범죄를 저질렀다. 더욱 경악할 일은 피해자를 ‘노예’로 불렀다는 것이다. n-번방 사건은 비대면 소통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명분을 줄 것이다.

팬데믹 시대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모든 것에 앞선다. 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국가의 통제는 무한대로 커질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약화되고 시장경제보다 계획경제가 중요해지는 시대는 암울하다. 팬데믹이 지나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온전한 언택트 사회가 도래하려면 어서 빨리 백신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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