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회장은 자신의 베팅 중 최고 성공작으로 꼽히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그룹홀딩 주식과 미국시장 진출의 핵심이었던 T-모바일US 주식 등 알짜배기 자산을 팔아치우거나 매물로 내놓았다. 코로나19 충격에 소프트뱅크 실적이 사상 최악으로 추락하자 생존을 위해 손 회장이 내놓은 궁여지책(窮餘之策)이라는 평가다.
1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손 회장은 전날 실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알리바바 지분을 매각해 1조2500억 엔(약 14조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손 회장이 지난 3월 발표한 최대 4조5000억 엔 규모의 자산 매각 계획의 일환이다. 소프트뱅크는 자산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자사주 매입과 부채 삭감에 나서 주가를 안정시키고 재무구조를 건전화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그동안의 투자 실패로 지난 2019회계연도 4분기(올해 1~3월)에 1조4381억 엔의 순손실을 내면서 일본 기업 사상 최대 분기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생존이 불투명한 지경에까지 이르러 손 회장의 위기감도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이 매물로 내놓은 또 다른 핵심 자산은 바로 미국 3위 이동통신업체인 T-모바일 주식이다. 소프트뱅크는 T-모바일 지분 약 25%를 보유하고 있다.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는 T-모바일 주식 200억 달러(약 24조5260억 원)어치를 매각하기 위해 구매자를 찾고 있으며,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을 주간사로 고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T-모바일 지배주주인 도이체텔레콤은 지분율을 현재의 약 44%에서 50% 이상까지 높일 수 있도록 소프트뱅크 보유 주식을 매입할 권리가 부여된다. 한 소식통은 소프트뱅크가 다른 투자자에게도 T-모바일 주식을 매각해 지분율을 지금보다 훨씬 더 낮출 계획이며, 이르면 이번 주에 ‘딜(Deal)’이 발표될 수 있다고 전했다. T-모바일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1260억 달러에 달해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총 31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알리바바나 T-모바일 모두 손 회장의 투자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손 회장은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이었던 알리바바에 2000년 20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14년 후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손 회장이 투자한 돈은 600억 달러로 불어나게 됐다. 알리바바 투자에서 얻은 자신감이 1000억 달러 규모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출범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공교롭게도 알리바바 주식 현금화 소식과 함께 13년간 소프트뱅크 이사회에 있으면서 손 회장과 오랜 인연을 쌓아왔던 마윈 알리바바 설립자도 6월 25일부로 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손 회장과 마윈의 작별에 “개방적이고 세계화된 기술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손 회장은 2012년 미국 이통사 스프린트를 인수하고 나서 이를 T-모바일과 합병시켜 버라이존과 AT&T의 아성에 도전하려 했는데 지난달 합병이 마무리되는 등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음에도 눈물을 머금고 주식 대부분을 정리하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소프트뱅크는 캐시카우인 일본 이동통신 자회사 소프트뱅크코퍼레이션 지분 매각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소프트뱅크가 자산 매각으로 당분간 자금 융통에 문제는 없겠지만, 투자회사로서의 본질은 크게 손상됐다며 시장 불안 해소를 의식해 투자에 소극적인 자세가 된다면 장기적으로 그 미래가 더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